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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핀치] Finch's Pub

by 개무 2017. 2. 19.

 

* 서부시대 au인지 아무도 모르는 au





 

 “자네 혹시 그 소식 들었나?”

 

 펍에 들어서자마자 모래 먼지를 풀풀 일으키며 곧장 카운터로 다가온 한 남자는 눈치를 살피더니 속삭이듯 말을 걸어왔다. 낡은 카우보이 모자를 벗으며 다짜고짜 말을 뱉는 자에게 늘 마시던 술을 내어주자 사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검은 코트’ 말이야. 그 자가 이 동네에 왔다는 소문이 있어.”

 “여기에?”

 “장난해? 당연히 자네 소식을 들었겠지!”

 

 남자는 급히 잔을 들이켰다. 돈도 내지 않고 문을 나서 말을 타고 바쁘게 사라지는 뒷모습을 쳐다보다 눈길을 돌렸다. 이곳은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별 볼 일 없는 완전히 평범한 동네였다. 조금 특이한 점은 그곳에 위치한 펍이자 중개소인 ‘핀치스’의 주인장이 정보를 꽤나 잘 물어다 주는 덕분에 다른 곳 보다 수입이 더 짭짤하다고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게 수완이 좋은 것도 아니고 아주 조금 더 돈이 되는 것뿐이기에 작은 보너스인 셈 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주위 소문을 잘 주워듣고 다니는 사냥꾼들에겐 그 펍은 조금 달랐다. 이름 좀 날린다는 사냥꾼들이 자주 들락거렸고 고급 정보로 유명했다. 해롤드 핀치라고 불리는 남자는 다양한 분야의 지명수배자 명단을 갖고 있었고 명단도 그 일대에선 가장 빠르게 수정되었다. 그런 소문이 일명 ‘검은 코트’의 귀에도 들어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남자는 펍의 주인장에게도 미스터리에 가까웠다. 사실 남자인 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목격담에 의하면 덩치나 행동거지로 봤을 때 남자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간신히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몇몇 있어도 직접적으로 대면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그 자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핀치는 자신의 소문을 듣고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분명 그 자가 원하는 정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얼굴을 봤다고 해서 죽이지는 않겠지,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딱히 보디가드는 없지만 작은 펍엔 늘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었고 그들은 충분히 핀치를 지켜줄 수 있었다.

 

 갑자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물방울 소리였다. 위태롭게 들고 있던 유리잔을 내려놓고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날씨가 우중충하더니 결국 세찬 소나기가 퍼붓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길어봤자 두세 시간 정도면 짙은 구름은 물러날 것 같았다. 이미 사람들은 자리를 뜬지 오래였다. 오랜만에 텅 빈 가게를 둘러보다 오늘 장사는 이만 접어야겠다고 생각한 핀치는 입구로 다가가 푯말을 뒤집었다. 그때 누군가 문 앞에 나타났다.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키 큰 남자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영업 끝났습니다.”

 “비를 피할 곳이 없어서요.”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쫄딱 젖은 남자가 퍽 불쌍해 보인 핀치는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남자의 옆에 있는 개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목줄도 없이 잘도 따라다니는 신기한 개라고 생각했다. 고맙다고 중얼거린 남자는 주인장을 지나쳐 외투도 모자도 벗지 않은 채 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핀치는 가게를 물바다로 만들고 있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친절하게 마실 물과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두세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겁니다.”

 “네?”

 

 핀치는 그림자가 내려앉아 오묘한 빛을 내는 남자의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비요. 하늘을 보니 그러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등이 아픈 거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는 내키지 않았다. 습기 가득한 날은 불편한 몸을 더욱 불편하게 했다.

 

 “여관을 찾지 못했어요.” 남자가 개를 수건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어디에서 오신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마을 밖을 나돌아다닐 사정이 못 되는 핀치는 늘 다른 도시가 궁금했다. 무심코 물은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그저 심기가 불편한 것인지 남자는 찰나였지만 핀치의 눈을 마주한 채 입을 여는 걸 머뭇거렸다. 주인장은 그걸 알아챘다.

 

 “…브루스톤 쪽을 들렸다 오는 길입니다.”

 “그쪽은 꽤 건조한 곳이죠. 전 이만 가게 정리를 해야 해서요.”

 

 핀치는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심장은 엄청나게 쿵쿵 거리며 뛰고 있었다. 조금 전 알아차린 건 저 남자의 코트가 검은색이었다는 것과 목소리가 소문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상착의가 일치하는 사람이 지구에 단 한 명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핀치는 느낄 수 있었다. 저기 구석에 앉아있는 남자는 그 유명한 ‘검은 코트’였다. 이제 보니 앉은 자리도 주변을 감시하기 편하지만 자신은 쉽게 들키지 않고 탈출도 용이한 최적의 장소였다. 물론 지금은 손님이라곤 ‘검은 코트’ 뿐이라 들키고말고 할 것도 없었지만 하는 행동은 분명 전문 사냥꾼이었다.

 

 주방에 들어온 핀치는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동그란 안경을 고쳐 썼다. 찬물을 들이키니 조금 진정 되는 것을 느꼈다. 개가 있다는 소문은 못 들었는데. 머릿속을 정리해야 한다. 분명히 여관을 찾지 못한 게 아니다. 일부러 이곳에 들린 것이다. 이 가게도 꽤 큰 거리에 들어서 있지만 여관 하나가 바로 한 블록 앞에 있기 때문에 여기로 들어온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핀치는 자신이 아는 정보 중 무엇이 저 남자와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모은 ‘검은 코트’에 대한 정보는 그 어느 것보다 미비했다. 그가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과정에 방해물이나 관련된 자들을 죽이고 다니지만 그 목표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검은 코트’의 손에 죽은 자들에게서도 공통점은 찾지 못했다. 핀치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목적은 몰라도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라면 이름 있는 단체를 찾을 것 같아서 여러 큰 단체들을 떠올렸지만 여전히 접점은 없었다.

 

 “이봐요.”

 

 주방에 들어온 이후로 쭉 멍청히 서서 잡념에 빠져있던 핀치는 갑자기 뒤에서 들린 낮은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홱 뒤돌아섰다. 목이 뻐근해지며 고통이 퍼지고 있었다. 핀치가 뒷목을 잡으며 표정이 점점 좋지 않게 변하자 남자는 당황한 것 같았다.

 

 “미안합니다. 물어볼 게 있어서…. 괜찮아요?”

 “아뇨.”

 

 당황한 남자를 뒤로하고 핀치는 남자를 지나쳐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하게 준비해둔 방이지만 그렇다할 가구는 없는 대신 책들이 아주 많았다. 남자에게 자리를 권하며 핀치는 소파에 조심스레 엉덩이를 붙였다.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개가 ‘검은 코트’의 옆에 바싹 붙어 앉는 걸 지켜보았다.

 

 “궁금하신 게 뭡니까?”

 “…사람 하나를 찾는데…. 정보가 부족해요.”

 

 그토록 궁금하던 이야기는 모든 이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의 목표는 고작 사람 하나였다.

 

 “이름 밖에 모릅니다. 피터 안트. 그의 아내인 제시카 안트가 사망했고 강도로 인한 죽음으로 처리됐는데 그 후에 이사를 했다고 들었어요. 근데 거기가 어딘지 정보가 없네요.”

 “그 정도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남자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장의 행동도 단호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은 그 남자가 자기 부인을 죽인 겁니다. 남자가 의처증이 있었거든요. 오해한 거죠.”

 

 핀치는 어슴푸레 기억나는 사건을 찾기 위해 종이 무덤을 뒤졌다.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사건이다. 그냥 흔해빠진 사건 중 하나였다. 남자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지만 곧 그 생각을 지웠다.

 

 “정보가 좀 있나요?”

 “알고 오신 거 아닙니까?”

 

 남자는 대답 대신 머쓱한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핀치는 그 정보를 다른 사냥꾼들에게 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에게도 팔았고, 유명인사 ‘검은 코트’는 비가 그치자마자 정보에 표시된 곳으로 곧장 출발했다. 맡기고 간 개는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책을 뜯어 먹긴 해도 상당히 똑똑했다. 핀치는 딱히 이 일을 떠벌리지 않았고 운 좋게도 소나기가 쏟아지는 동안 어느 누구도 돌아다니지 않아 ‘검은 코트’를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어느 날 훤칠한 생김새의 남자가 ‘핀치스’에 들렀는데 무슨 일인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존 리스를 수상히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의연한 주인장의 태도에 의심의 눈초리는 차츰 사라져갔다. 그 무렵 ‘검은 코트’가 종적을 감췄다는 소문이 입에 오르내렸는데 누군가는 그가 목적을 이뤘다고 했고 누군가는 죽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소문도 곧 사그라들어 후에는 한 이야기로만 사냥꾼들 입방아에 오르내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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