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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아귀] 라면 먹고 갈래?

by 개무 2017. 2. 19.

 

* 영화 타짜 2006년 개봉작.





 

 “오랜만이네?”

 

 고니가 툭 내던진 말은 앞에 앉아있는 남자의 귓구멍 근처에도 닿지 않은 듯 그 반응은 뜨뜻미지근하기만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을 알 수 없는 눈빛도, 그걸 가린 까만 선글라스도, 입은 것도 벗은 것도 아닌 걸친 것 같은 옷매무새도 여전했다. 변한 것이 없었다. 요상한 장갑을 제외하고는. 아귀는 상대의 눈길이 제 손 언저리에 닿은 것을 느꼈는지 슬그머니 테이블 밑으로 내렸다. 그 움직임을 따라가며 고니가 물었다.

 

 “어찌 됐수?”

 “…오지랖은.”

 

 허-. 입에서 헛바람이 세어 나왔다.

 

 “손모가지는 좀 괜찮나 몰라. 꿈에 벚꽃이 흩날리지는 않으시든? 아니면 단풍?”

 “지금 사람 불러다 앉혀놓고 말장난이냐.”

 “우리가 장난칠 사이던가.”

 

 금세 날카로워진 공기가 피부를 뚫고 들어온다. 어느 누구도 모르겠지만 고니도 이런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간만에 돌아온 고향 땅은 어떻게 돌아가나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귀의 얼굴을 보자 그냥 말이 그렇게 튀어나왔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친절하게 대할 수 없는 자였다.

 

 “좀 오래 있을 것 같은데, 딱히 아는 사람도 없어서.”

 

 고니는 남들처럼 멀쩡한 손으로 잔만 뱅뱅 돌리고 있는 아귀를 눈길을 따라가 봤지만, 목적지는 불분명했다. 그는 좀 불안해보였다.

 

 “정마담은?”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든가.”

 “뭐, 그 정도로 궁금하진 않고.”

 

 고니는 목적지를 찾는 대신 아귀를 다시 쳐다보았다.

 

 “아직도 꽃놀이하시나?”

 

 이제야 아귀의 눈길이 목적지를 찾아 내려앉았다. 축축한 눈은 물기 어린 채 그대로였다. 그의 눈을 보자 이곳이 마치 비린내 가득했던 치열하기 짝이 없었던 그 배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이었지만 엊그제마냥 생생했다. 앞의 남자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고니는 그렇게 느꼈다.

 

 “패 잡으면, 남은 손모가지도 잘라버릴텨?”

 “원한다면 기꺼이 잘라드려야지.”

 “그때처럼 개수작 부릴 거면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인디?”

 “증거 있어?”

 

 아귀는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때도 그 증거를 찾지 못해 이 사단이 났으니 지금 와서 증거 나부랭이가 있을 턱이 없었다. 있다 해도 이미 잘린 손목은 회생 불가능했다. 오래전에 다 아물었을 그 손이 다시 쑤시기라도 하는 건지 멀쩡한 손을 반대 손에 가져다 댔다. 고니는 벌떡 일어나 탁자 너머에 숨겨진 그 손의 팔뚝을 낚아채 끌어냈다. 당황해서 쉽게 딸려오는 손의 장갑을 벗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보기 좋네.”

 

 남자의 손은 그때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고니는 그 손을 보고 망치질로 사람의 손이 아작나면 이정도구나 생각했다. 광렬이 형보단 나은 처지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귀는 손가락이 두 개나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손을 쳐 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헛소리는 네 불알에나 씨부리고, 나는 갈랑게.”

 “아가리 털지 말고 앉아. 제안할게 있어.”

 

 말을 들을 자는 아니었다. 자신을 만나준 것도 신기할 노릇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결국 만났을 테지만 할 말은 끝까지 해야 후회하지 않는다. 고니는 떠나는 아귀를 서둘러 붙잡았다. 옷가지를 잡으니 걸치고만 있던 옷은 쉽게 벗겨져서 고니 손아귀에 쥐어져 있었다. 아귀도 당황해 뒤돌아섰다.

 

 “뭣이 아직 할 말이 남았다고.”

 “이제 남 손목은 못 자르지? 아무도 안 써주는 거 알아.”

 

 아귀는 그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아무 말이나 내뱉은 거지만 입을 열지 않는 걸 보면 어느 정도 들어맞기는 한 모양이다.

 

 “내 밑으로 와.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남의 손모가지 자르는 그 특이한 취미 다시 하게 해주지.”

 “니가 뭔 수로?”

 “다 방법이 있어. 할지 말지 그거만 말해.”

 

 구라도 까본 놈이 깐다고 고니의 말에 아귀는 답지 않게 눈을 내리깔았다. 고니는 웃기게도 그 잠시 동안 보이지 않은 눈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어이가 없는 나머지 피식 웃고 말았다.

 

 “나한테 시킬게 뭐인디 굳이 와서 그려?”

 “천하의 아귀가 왜 이렇게 혀가 길어? 아, 이제는 물 밑인가?”

 

 시건방을 떨어대는 고니의 말도 이제 상대하기 귀찮은지 그냥 무시하는 아귀였다. 고니는 자신이 긴장하고 있는 게 틀킬까 싶어 조마조마 한 상태로 그의 입을 유심히 살폈다.

 

 “시간이 필요하면 주고, 일주일 어때?”

 

 별다른 확답 없이 흐지부지하게 헤어졌지만 고니는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의 연락이 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

 

 

 고니는 아귀에게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면 패를 만지게 해 준다고 했으나, 그 제의를 수락하고 난 후 이 주가 지나도록 고니는 그저 남자를 전국 방방곡곡 데리고 다니기만 하였다. 이 집의 뭐가 맛있다느니 어디의 경치가 끝내준다느니 되도 않는 소리나 지껄이며 아귀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으나 생각보다 인내심이 강한 아귀는 일관성 있게 시큰둥한 반응만을 보였다. 하지만 고니는 그것조차도 상관이 없는 건지 좋은 건지 홍길동이라도 빙의된 듯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람처럼 돌아다녔다. 아귀가 무슨 생각으로 끌려 다니는지 정도는 이미 한 번 생각해 본 일이었다. 이 사람 정도면 한 손으로도 충분히 괴상한 취미를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눈과 귀는 멀쩡하니까.

 

 주택가를 같이 걸어가던 중 아귀가 우뚝 멈춰 서서 처음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어이- 할 짓 겁나게 없나 본디… 그만 좀 소새끼마냥 몰고 다니지? 니가 착각을 해도 단단히 한 모양-”

 “알고 있어.”

 

 아귀는 축축한 눈으로 고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고니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한 손으로도 충분한 거 알고 있다고. 이해가 안 되는 건, 무슨 생각으로 순순히 날 따라다니는지 모르겠다는 거야. 대체 이유가 뭐야?”

 

 고니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늘 아귀같은 남자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건 이런 상황에서 되려 당당하게 물어오는 어린 놈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뭘 믿고 이렇게 나대는지 궁금하겠지. 물론 한때 ‘천하의 아귀’라는 수식어를 가졌던 그의 손목을 날렸다는 게 엄청난 믿을 구석이긴 하겠지만.

 

 “내 손모가지 날린 새끼가 뜬금없이 나타나서 개소리 지껄이는데 궁금하지 않겄어?”

 

 그 말을 들은 고니는 이 남자는 절대 자신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확신하고 크게 웃었다. 작게 인상을 쓰는 아귀의 어깨를 감싸며 속삭였다.

 

 “라면 먹고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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