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든 알아주길 바란 적이 없었고 알게 놔두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존재했다.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갖은 노력을 해 온 루핀도 그 과정이야 어떻든 결국 들통이 난 마당에 스네이프라고 무조건 같은 상황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고 모든 것은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물론 그 시간이 죽기 전 일지 죽은 후 일지 아니면 오늘이 될 지 아무도 모르지만 스네이프는 생각보다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그를 의심하는 세력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들은 힘이 없었고 설득력도 증거도 아무것도 없이 단지 몇몇의 심증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보다 적대심을 숨기지 않고 지팡이 끝을 겨누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는 사람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시리우스 블랙이다.
“스니벨루스, 무슨 수작이지?”
“자네한텐 전혀 볼 일 없네.”
스네이프는 무시했다. 상대할 가치가 없는 놈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쉽게 떨칠 수는 없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지긋지긋하게 뒤를 졸졸 따라붙었다.
“더러운 자식! 어떻게 멀쩡히 숨 쉬고 살 수가 있지? 네가 덤블도어는 속여도 난 아냐. 네가 뿌리까지 어둠의 마왕 편이라는 건 지나가던 개도 알거다!”
대단히도 꾸준한 적대감이었다. 스네이프는 그것만큼은 블랙을 칭찬해주고 싶었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물론 그런 감정 소모를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으면 집에 갇혀 있는 게 조금이나마 편해질 거라는 충고도 하지 않았다.
“자넨 지나가던 그 개보다도 지능이 딸리는 것 같으니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게 낫겠군. 입구에 있는 초상화보다 도움이 안 되니 고민이 많겠어.”
스네이프는 미친놈처럼 번뜩이는 블랙의 눈을 보면서 이토록 다른 단원들이 없었던 게 아쉬웠던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순식간이었다.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빼들기도 전에 블랙은 커다란 검은 개로 변신해 달려들어 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스네이프는 고통 섞인 신음과 함께 쿵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아무리 팔을 허우적대도 손아귀에서 벗어난 지팡이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운동이라고는 학창 시절부터 철저히 필요에 의한 움직임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스네이프에게 곰같이 커다란 개를 물리적으로 떼어내기란 역부족이었다. 다른 발로 개를 열심히 걷어찼지만 다시금 달려드는 통에 힘만 빠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날아온 붉은빛이 개를 맞추었고 스네이프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시리우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루핀이었다.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블랙은 괜히 큰소리치며 잘못은 저놈이 했다는 둥 얼버무리며 되려 스네이프를 욕했다. 입가에 묻은 피를 튀기며 소리치는 블랙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스네이프는 시끄러운 두 사람을 무시한 채 얼른 기어서 지팡이를 챙기고 주머니에 든 약병들을 확인했다. 멍청한 블랙 덕분에 다 부서지고 다리도 아작 날 뻔했는데 다행히 미리 걸어둔 것 보호 마법은 신의 한 수였다.
“으….”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자 물어뜯긴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마치 몇 년 전 플러피한테 물렸던 때와 똑같은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같은 다리였다.
“세베루스, 괜찮은가?”
미친 듯이 화를 내던 루핀이 스네이프의 작은 신음을 용케 알아듣고 얼른 부축하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루핀 녀석만 아니었어도 다리는 멀쩡했을 거라는 생각에 붙잡는 손을 떨쳐내며 말했다.
“신경 끄게. 아니면 애초에 개새끼 관리를 잘 하던지.”
“이 새끼가!”
“시리우스!!” 루핀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당장 방으로 들어가!”
시리우스 블랙은 무어라 더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을 달싹거렸지만 루핀의 단호한 눈빛에 이기지 못하고 곧장 방으로 사라졌다. 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상처 좀 봐도 될까?”
스네이프는 다시금 조심스럽게 붙잡아 오는 손길을 피했다. 어느 누구와도 닿고 싶지 않았다.
“됐으니까 이거나 받게.” 스네이프는 짜증이 치솟았다. “고작 주머니 하나 건네주는 게 이렇게 어려워서야.”
“나 때문에……. 미안하게 됐네.”
늘 저런 식으로 나올 때마다 스네이프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자기가 무슨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것 마냥 자기 탓을 할 때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 자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난 순전히 덤블도어 부탁으로 온 것 뿐이야.”
힘없는 표정으로 애써 웃는 모습을 보니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순순히 주머니를 받아든 루핀에게 제때 잘 마시라는 말을 하고 발을 내디뎠다.
“으윽-.”
아주 떼어먹을 작정으로 물어뜯은 것 같았다. 루핀은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다고 중얼거리는 스네이프를 부축해 거실의 소파에 거의 내동댕이치듯 앉혔다. 보기 드문 모습에 스네이프는 당황해서 그저 루핀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믿을 수가 없어.”
작게 탄식하는 루핀의 목소리를 들은 스네이프는 뭔가 좀 민망해졌다. 물린 부분은 옷이든 살가죽이든 너덜너덜해 멀쩡한 구석이 없었다. 루핀은 맞은편에 앉아 스네이프의 다친 다리를 제 다리 한 쪽 위에 올려놓았다. 루핀의 지팡이 끝에서 나온 물이 상처 부위를 씻어냈지만 붉은 피는 지하수라도 터진 듯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마법으로 불러낸 디터니 용액을 천천히 계속해서 부었다. 스네이프는 고통에 움찔거리는 몸을 제어할 수 없었다. 담그고 있는 게 훨씬 좋겠지만 양은 넉넉지 않았고, 디터니로도 완전히 아물게 하지 못할 만큼 상처는 심각했다. 응급처치도 한계가 있긴 하지만 별 대단치 않은 루핀의 치료 마법을 본 스네이프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감긴 붕대가 어설퍼 보였다.
“치료마법을 제대로 배워둘 걸 그랬군.”
“됐네.”
“돌아가면 곧장 폼프리 부인을 찾아가는 게 좋겠어.”
“그러지.”
호그와트의 병동까지 기어가게 될지라도 스네이프는 그냥 계속 대답했다. 안 그랬다가는 하루 종일 붙잡혀 걱정하는 소릴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이번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루핀이 부축을 해 주었다. 어두침침한 입구 앞에서 문을 열고 가려는 스네이프를 루핀이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스네이프는 얼른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짜증이 날 정도로 미적대는 루핀을 떨쳐내고 문고리를 돌리자 다시 붙잡아왔다. 험상궂은 얼굴을 본 루핀이 조금 미안해하는 것 같았지만 손을 놓지는 않았다.
“조심히 가게.”
루핀은 스네이프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스네이프는 다시 문고리를 열었고 집을 벗어나자마자 사라졌다. 남자가 사라진 곳에서부터 울리는 소리가 루핀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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