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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세중병원 과장 4인방

by 개무 2017. 2. 19.

 

 

 

 

 

 “김민준 교수님! 박원국 환자 상태는 어떻습니까?”

 

 옹기종기 모여 있던 기자 무리들 중 한 명이 수술 방에서 막 나오는 민준을 발견하고 다짜고짜 환자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그 기자를 시작으로 다른 수많은 기자들의 마이크와 카메라가 민준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번쩍거리는 빛과 수 없이 질문을 내뱉는 기자들 속에 파묻힌 무대 체질 김민준의 표정은 웬일인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환자 수술 아닙니다.”

 

 카메라 앞에선 180도 달라지는 민준이 오늘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뒷짐을 지고 짜증스런 말투가 딱 최인혁이나 인턴들에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민준은 막 수술이 끝나서 피곤한데 좀 전 수술이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질문을 해대는 기자들을 오늘만큼은 진심으로 내쫒고 싶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의사 상태가 어떻든 오직 대통령 오찬에 초대받은 기부천사 박원국 환자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2차 수술은 언제 들어갑니까? 희망이 있나요?”

 

 또 다른 기자가 물었다. 곧 다른 기자들이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민준은 저 기자가 아주 속 편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 맨날 물어보는 게 그거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그 말은 철저하게 머릿속에서만 울려 퍼졌고 땅에 발이 붙은 듯 딱딱하게 서 있는 민준의 표정만 더 안 좋아질 뿐이었다.

 

 “여전히 환자의 몸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점점 2차 수술할 정도의 몸 상태는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민준은 취재진들의 따발총처럼 쏟아지는 질문들을 바쁘다며 뒤로 하고 샤워실로 가 몸 여기저기에 튄 피들을 씻어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수술 후 코에 남아있는 진득한 피 냄새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계속 맴돌았다. 다른 많은 의사들과 같이 그에게도 이젠 지워질 수 없는 흉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이 세중 병원의 일반 외과 과장직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환자를 맡은 이후 그가 주치의라는 소식이 기자들 귀에 들어가자마자 어떤 환자를 수술하든 수술실에서 나오기만 하면 기자들이 개떼같이 우르르 몰려와 질문들을 퍼부어대니 아주 미칠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한 과의 과장에 인턴과 레지던트, 펠로우까지 한 부대를 거느린 마당에 뭐가 부족해서 이사장에게 달려갔는지 자신의 무한한 출세욕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새롭게 시작하기도 늦은 나이에 과장 자리 지키기도 바쁜데 그땐 왜 그렇게 앞뒤 생각을 안 하고 달려들었는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미 이사장이 직접 찾아와서 과장직 걸고서라도 살려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황에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순식간에 인생 바닥을 기는 건 말해봐야 입만 아팠다. 게다가 병원 평판까지 나빠지는 건 물론이고 이런 소문이 다른 병원에 떠돌면 이 바닥에선 더 이상 얼굴도 못 들고 다닐 일이었기에 스트레스는 나날이 늘어만 갔다. 아니 애초에 다른 병원에 갈 수나 있을지 그것조차 의문이었다.

 

 “이거 완전 최인혁이 같은 상황 아니야….”

 

 한편으로는 이러다 박원국 환자 옆에 눕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고민에 휩쌓인 채 민준은 느릿느릿 옷을 갈아입고 자연스레 다른 과장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만큼은 이곳에 가기가 싫었지만 그래도 이 사람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는 걸지도 몰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늘 그렇듯 세 명의 과장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자신을 따라오는 눈빛들이 느껴졌다. 민준이 빈자리에 아무렇게나 털썩 주저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아니 뭔 놈의 기자들이 수술 방에서 나오기만 하면 쪼아대노. 기사 쓸 게 이거밖에 없나.” 툴툴거리는 민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나쁘면 더 나빴지 좋진 않았다.

 “허허, 기자들 일이 어쩔 수 없는 건데요, 뭐.”

 

 민준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그러게 나서길 왜 나서요? 누가 무대 체질 아니랄까봐 그렇게 티를 내고 다니나 그래?”

 

 세헌은 몸을 거의 민준 쪽으로 돌려서 앉은 채 대놓고 웃으며 즐겁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다른 과 과장들도 기다렸다는 듯 줄줄이 떠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좀 늦길래 뭐하나 했더니… 아예 바로 이사장님한테 줄대시던데요?”

 “그래요. 거 사람이 참…, 왜 그러나 몰라? 이렇게 무대만 생기면 앞뒤 안보고 쪼르르 달려가니, 원.”

 

 병국과 호영이 신이 나서 민준을 타박했지만 그의 성격상 마냥 듣고만 있을 순 없었다. 하지만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민준은 지금 사태가 어떤지 알기에 쭈뼛쭈뼛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뭐… 최인혁이도 직접 나한테 맡겼고… 그래서 그렇게 된 거지, 거 언제 쪼르르 달려갔다고…. 그리고 내는 그냥 지나가는데  이사장님이 뭔 일이냐고 부르셨다니까요.”

 

 민준은 억울해했지만 그런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누가 믿어요?” 이 말을 하는 병국의 표정은 상대에 대한 믿음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김과장을 한두 번 봤어요?” 병국은 버릇처럼 입을 삐죽댔다.

 “정신 좀 차려요. 이번 일, 쉽게 될 거 아닌 건 수술한 본인이 누구보다 더 잘 알거 아닙니까.” 호영도 으레 그 타이르는 듯 한 조용한 말투로 나무랐다. 민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걱정스러움을 지나 살짝 다정해보이기까지 했다.

 “아, 내만 이 환자 케어합니까? 참 나.”

 

 민준은 이 답답하고 한 치 앞을 모를 상황에 과장들마저 쪼아대니 아주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도 알다시피 이익관계에 맺어져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최인혁을 내보내자는 것도 모두 그의 행동이 각자들의 과에 영향을 끼치니 나온 말들이었다. 민준은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최인혁이 조금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동안 방안은 네 명의 사람이 머리 굴리는 소리와 숨소리 빼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환자 상태는 좀 어때요?” 세헌이 살짝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며 불쑥 말했다.

 “…참 빨리도 물어보십니다.” 눈을 흘기는 민준을 보며 세헌은 조금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엉망진창이죠, 뭐. …췌장액이 다 세서 장기들이 아주 떡이 되가지고는….” 민준은 작게 혀를 찼다.

 

 한 템포 느리게 대답하는 민준은 과장들이 보기에도 아주 지쳐보였다. 빤질거리던 피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모래 바람이 부는 사막을 연상시켰다.

 

 “2차 수술은 무슨,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죠. 오토바이 타다가 날아갔으면 마 즉사지 바로. 쯧.” 민준은 잠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최인혁이는 앞뒤 안 보고 일단 환자를 살려놓고 보는 게 문제에요. 뭐 몸뚱이는 다 병신 되도 숨만 붙어 있으면 끝인가? 참 나. 애초에 지가 안 데려왔으면 이런 일도 없는 거 아이가!”

 

 민준은 물기어린 한숨을 쉬며 허벅지에 팔을 괸 채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세 과장들은 그런 민준을 놀랍기도 하고 동시에 불쌍하기도 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다들 최인혁의 위치에 대해 고민이 없지는 않았다.

 

 “저, 그나저나 저 환자 고비 넘기면 그걸 핑계로 다시 주저앉게 되는 건가요?”  세헌이 다른 과장들이 굳이 말을 꺼내기 싫어서 입 닫고 있던 부분을 콕 집어 말했다.

 “그러게요. 사표 수리도 안됐다던데?”

 

 병국은 살짝 걱정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안도하는 것 같기도 한 애매한 표정을 짓자 곧바로 호영이 말했다.

 

 “아니, 왜요? 벌써 다른 곳에 들어갔다고-.”

 “여긴 이제 못 있어요!”  갑작스레 세헌이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소릴 높였다. 그는 최인혁이 어떻게 되든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것 같았다. “사직서 내고 자기 발로 걸어 나가기까지 한 사람을 받아주고 그러면 병원 규칙이 왜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 입 아프게 떠들어봐야 한숨만 나올 뿐 어쩌지 못하기는 다들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김과장이 언론에 올라가 있으니까 잘 하세요. 예?” 호영은 늘 그렇듯 걱정많은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잠시 뜸들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 옷 벗지 말고요.”

 “그래요. 잘못하다간 당신뿐만이 아니라 온 병원이 다 망하게 생겼어요.”

 

 병국은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이런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그는 약간의 뜸들이더니 곧 놀리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누가 보아도 이 상황을 즐기는 게 역력했다.

 

 “수고 좀 하세요~”

 

 민준은 이놈의 과장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을 놀려 먹는 게 아주 재수가 없었다. 한 명씩 얼굴을 골프채로 날려주고 싶은 충동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옴을 느꼈다.

 

 “어우, 씨. 덥다, 더워.”

 

 민준은 얼마 쉬지도 못하고 다른 과장들에게 짓밟혔지만, 또 다시 요주의 인물의 안정을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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