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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인혁] 은 무슨 그냥 3인 등장

by 개무 2017. 2. 19.

 

 

 

 

 

 “…교수님?”

 

 민우는 자신이 이때까지 가장 많이 되뇌이고 내뱉었던 그 흔한 단어가 난생 처음 말하는 것처럼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최인혁 교수님?”

 

 그토록 불러보고 싶던 이름이었다. 아까와는 달리 이번엔 꽤 당당하게 말했지만 여전히 상대방은 들은 척도 않고 미동 없이 누워있을 뿐이었다.

 

 

*

 

 

 몇 시간 전 인혁은 우연찮게도 사직서를 낼 기회가 생겼고 꽤 손쉽게 근 3년 동안 몸담았던 병원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세중 병원에 온지 1년 만에 쓰게 된 사표 덕이 컸다. 그 뒤 제 몸의 일부처럼 지니고 다녔고 그렇게 2년이 더 지나 드디어 제 품에서 떼어낼 수 있었다. 이때까지 그것을 가지고 환자들을 받아왔고 그들을 위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이 사직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그건 제 역할을 충실히 다해 떠났다. 사직서가 자리 잡고 있던 품이 허전한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미 제 몸을 떠난 종이쪼가리였고 미련은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아무리 수술을 하고 환자를 살려내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서 조차 굳이 수술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전쟁터 같은 곳이 더 편할 것 같았다.

 

 그 생각대로 인혁은 집에 온 뒤 하루 종일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해외 쪽 일자리를 찾아보았다. 몇 시간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눈이 뻐근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 덧 점심때가 되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냉장고엔 물이 든 페트병 몇 개가 전부였고 배달음식도 시키기엔 귀찮았다. 결국 냉장고 위에 쌓여있던 컵라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두 번째 젓가락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자 벨 소리가 울렸다. 인혁은 손님이 누군지 생각할 것도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역시 한구였고 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를 집으로 들였다.

 

 인혁은 다시 라면을 먹으면서 노트북을 들여다봤다.

 

 “야~ 좋은 거 먹는구나?” 한구가 뻔뻔한 목소리로 우스갯소리를 했다. 하지만 곧 그 목소리는 인혁의 노트북을 보고 놀란 목소리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뭐야, 용병회사? 너 미쳤냐? 가서 총 맞아 죽을래?”

 “전쟁터야 말로 외과의사 필요한데 아냐.” 인혁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확고한 목소리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근데 왜 왔어?” 말을 건네면서도 인혁의 눈은 뚫어져라 노트북만 보고 있었다.

 “당구 한 판?” 한구가 불쑥 물었다.

 “짜장면 내기.”

 

 그제야 인혁은 자신의 친구를 쳐다보았고 오랜만에 그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콜!”

 

 인혁은 억지로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고 있던 라면을 당장 덮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밖으로 나갔다.

 

 

*

 

 

 “네가 졌지?”

 

 한구의 신이 난 목소리가 당구장에 퍼졌다. 그가 건 제안이 걸린 내기에 인혁이 지고 만 것이다. 처음 짜장면 내기에서 이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길 수 있을 거라 믿고 내기를 받아들였지만 결국 인혁은 지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리 내기에 졌다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대한민국에서 센터를 신청하고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일에는 정치적인 부분이 빠질 수가 없었고 거기다 트라우마 센터 같은 경우는 지속적인 자금이 지원되지 않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인혁이었다. 이 나라의 의료계에서는 꽤 힘든 부분이었다. 물론 한구가 인혁의 생각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전쟁터에 가서 고생하다 총 맞아 죽느니 차라리 여기서 긍정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

 

 

 “타! 태워다 줄게.”

 

 운전석 쪽으로 간 한구가 차 문을 열며 말했다.

 

 “코앞인데 뭐.”

 

 인혁은 한구가 자기를 위해 없는 시간 쪼개서 나온 걸 알고 있었다. 거기다 자꾸 트라우마 센터에 대해 말할게 뻔했기 때문에 빨리 보내고 싶었다.

 

 “야, 너 연습 좀 해야겠더라~ 취직해도 종종 치자?”

 “꺼져라~” 인혁은 실실 웃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였다.

 “연락 오면 꼭 받고!” 한구는 빼먹지 않고 인혁에게 당부했다.

 “빨리 가~”

 

 인혁은 한구의 제안을 고민하며 멍하니 걸었다. 과연 이 병원이 제대로 지원을 받으면서 운영이 될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꽤 괜찮은 제안이었고 한번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당장은 남는 게 시간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바로 옆 도로에서 쾅하고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주변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인혁은 분명 사고가 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몸을 돌리는 순간 날아오는 오토바이를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땅에 쓰러져서 누워있으니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뜬금없게도 세중 병원으로 가게 됐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하는 사이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간신히 살짝 뜨고 있던 눈을 서서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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