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푸 내놔 이 새끼드랑 中

개무 2017. 2. 19. 12:59

 

 

 

 

 

 

<6>

 

 “과장님~ 부르셨어요?”

 

 문을 빼꼼 열며 고개를 들이미는 경화를 본 민준은 의자에 앉으라며 손짓했고 보고 있던 책을 덮어 한쪽으로 옮겼다. 경화는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가서 앉자마자 민준이 먼저 말하기 전에 얼른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또 외상센터 이야기는 아니시죠?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전 아직….”

 “아, 아니다.” 민준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뭐 줄 게 있어서 불렀지.”

 “과장님~ 갑자기 무슨 선물을 다….” 금세 밝아진 표정으로 경화가 물었다. “뭔데요?”

 

 민준은 씩 웃으며 가운 주머니에서 푸 모양 선풍기를 꺼내 보여주었다. 경화는 깜짝 놀랐다.

 

 “어! 이거 나 과장님꺼 아니에요?”

 “그래, 인턴이 와서 찾데? 나 과장이 식당에서 놔두고 가서 내가 챙겼다.”

 “에이, 과장님~ 저는 이거 못 받죠. 나 과장님이 보시면 저 죽어요~ 지금 찾는다고 장난 아인데….”

 

 민준은 뭔가 실망한 듯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이 내가 써야겠네.”

 “안 돌려주시고요?” 경화는 당황했다.

 “그냥 돌려주면 재미가 없고…….”

 

 경화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 들려올지 이미 아는 표정이었다.

 

 “내기해야지, 내기!”

 

 

 

<7>

 

 

 인턴들은 경화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혹시 회의실에 있는 거 아니냐는 혁찬의 말에 병원에 있는 회의실은 다 돌아보았지만, 선풍기의 날개 한 짝도 발견할 수 없었다. 또다시 응급실 한편에 모인 인턴들은 고민에 휩싸였다.

 

 “이렇게 샅샅이 찾는데 코빼기도 안 보이네…”

 “진짜 누가 버린 거 아이가?”

 “맞네, 그거네! 안 그러면 이 정도로 열심히 찾았는데 안보일 수가 없지!” 그렇게 믿고 싶은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게…” 민우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어!!!! 그거 내꺼 아니에요?”

 

 한쪽에서 누군가 거의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는 걸 듣고 모두 그쪽을 쳐다보았다. 병국 앞에는 민준이 서 있었는데 그 손에 인턴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푸 선풍기가 들려있었다. 강진이 그러니까 안보이지. 라며 대박이라느니 하는 실없는 소리를 주절댔다. 그러자 혁찬도 와, 진짜 대박이다, 대박.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입니까, 제가 주웠는데.”

 “이거 봐요, 김민준 과장님! 주웠으면 애초에 당신께 아니죠!”

 “자기 물건 하나 제대로 간수 못 하고 흘리고 다닌 게 누군데요. 여기 뭐 이름 써놓은 것도 아니고.” 민준이 씩 웃었다. “주운 사람이 임자 아닙니까?”

 “장난하지 말고 빨리 내놔요!”

 “아이고, 장난은 무슨.”

 

 민준이 태평한 목소리로 말하자 병국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얼굴이 벌겋게 변해갔다. 지켜보던 민준이 인심 쓰는 척 한마디 했다.

 

 “그럼 내기에서 이기는 사람이 가지는 걸로 합시다.”

 “내기? 내기는 무슨 놈의 내기! 내거라니까요!”

 “아, 싫으면 할 수 없고.”

 

 민준은 약 올리듯 선풍기 바람을 병국에게 쏘아댔고, 씩씩대던 병국은 약 올리는 민준의 행동에 욕이라도 퍼부을 것 같았다. 그때 옆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튀어나와 욕지거리를 막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포커 한판 어때요?” 호영이 말했다.

 “그게 좋겠네요. 나도 합시다.” 갑자기 세헌이 나타나 끼어들었다.

 

 호영은 둘을 번갈아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자 엄지와 검지를 마주 비비며 콜? 하고 말했다.

 

 “그쪽들은 왜 끼어들어요?” 병국이 말했다.

 “에이, 그쪽들이라뇨. 그리고 딱히 주인도 없는 것 같은데 우리도 좀 바람 쐬면서 돌아다니면 좋죠. 안그렇습니까? 거 사람이 쩨쩨하게 왜 그래요?”

 

 호영이 으레 그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핀잔을 주자 그 말을 듣는 병국은 이젠 아예 어처구니가 없는 것 같았다.

 

 “아, 원래 내거라니까요? 누가 가지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니라니까!”

 “자자, 뭐 주인이 누군지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내기하기로 했으니까 포커로 이기는 사람이 가지는 걸로 합시다. 예?”

 

 세헌이 병국과 호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병국은 어이없다는 식으로 과장들을 둘러보았다. 민준은 어쩌든 상관없어 보였다.

 

 “참나…. 어휴, 갑시다.” 병국은 체념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과장님~ 뭐 하러 멀리 가세요? 옆에 중증외상 센터 안에 책상도 있고 의자도 있는데요!”

 

 그때까지도 살살 웃고 있던 경화가 재밌는 건 다 같이 봐야 한다며 가까이 있는 중증외상 사무실을 가리켰다. 그러자 민준이 네가 말할 거냐며 핀잔을 주자, 경화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민준이 한심한 표정으로 가자 하고 먼저 나섰다.

 

 “민우 쌤, 교수님이 허락하실까?” 재인이 물었다.

 “어….” 민우는 잠시 고민했다. “그럴 거 같은데? 별로 신경 안 쓰실 거 같아.”

 

 

 

<8>

 

 

 인혁은 오늘따라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어처구니없는 일로 찾아오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자신이 나가길 바라던 외상 외과 과장들이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흠, 내 잠시 여기 책상 좀 써도 되겠나.”

 “예? 뭐….” 뭔가 민망해 하는 민준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인혁이 말했다. “그럼 전 나가보겠습니다.”

 

 인혁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책상 정도야 쉽게 빌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불편한 공간에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앉아 있던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던 인혁을 민준이 붙잡았다.

 

 “어딜 가노? 할 것도 없다이가. 여기 자네 사무실 아니가?”

 “예….”

 

 안타깝게도 막 환자들을 살피고 와 있던 인혁은 제 사무실에 앉아서 논문들을 살펴보는 것 외에는 병원에서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 수많은 사람 덕에 집중도 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늘 텅텅 비어 있던 중증외상센터엔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거기다 네 과장은 책상에 둘러앉아서 최선을 다해 게임에 임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각과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세헌이 패를 한 장씩 돌리며 말했다.

 

 “아니, 근데 선풍기는 어쩌다 잃어버렸어요?”

 “그러니까요. 평생 끼고 다닐 것같이 하더니…” 호영이 패를 보더니 삥이라 말하며 반창고 하나를 내놓았다.

 “그걸 기억했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요?” 병국도 툴툴대며 반창고 하나를 내었다.

 “하긴 뭐, 그것도 그렇네. 따당.” 민준이 비꼬며 반창고 두 개를 내놓자 병국이 노려보며 달갑지 않은 듯 작게 아이 진짜. 하고 말했다.

 “따당이요?” 세헌은 조금 망설였다. “…콜입니다.” 결국 반창고 두 개를 얹었다.

 

 호영도 콜이라며 두 개를 냈다. 병국이 제 패를 보더니 도저히 안 되겠던지 신경질적으로 카드를 탁 내려놓았다.

 

 “저는 다입니다, 다이. 어휴….”

 “벌써 죽고 그래요~”

 

 호영이 아쉬운 듯 말을 뱉었지만 세헌은 네 하고 대답하며 자기 카드 외엔 관심도 없는 태도였다. 민준도 힐끔 쳐다봤을 뿐 신경도 쓰지 않고 조용히 세헌이 나눠주는 카드를 받았다. 세헌은 비장한 표정으로 카드를 쥐고 패에 입김을 훅 불어넣으며 살며시 카드를 보더니 호영을 재촉했다. 호영도 자기 패를 보더니 이것저것 재어 보다가 결심한 듯 반창고 하나를 걸었다.

 

 “사삥입니다, 사삥.”

 “이게……, 절반이 얼마지 이게….” 제 차례가 된 민준은 손을 들어 앞에 쌓인 반창고를 반으로 갈랐다. “반 갈라서.”

 

 민준은 다시 엎어둔 카드에 손을 올리고 초조한 듯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 소리는 다른 플레이어들도 긴장되게 하는 소리였다. 세헌은 살짝 고민하더니 깊은 숨을 내쉬고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후… 죽었습니다….”

 “아니, 둘 다 죽으면 나 혼자 어떡하라고….” 호영은 게임이 끝난 세헌과 병국을 번갈아 보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 봉..봉인데, 봉. 아, 이거 봐. 봉인데! 죽는다, 내가. 아, 뭔데, 뭔데.”

 

 호영은 들고 있던 패를 내팽개치고 민준의 카드에 손을 뻗어 뒤집어보았다.

 

 “아무것도 아입니다.”

 

 민준은 씩 웃으며 산처럼 쌓인 반창고를 모두 제 옆으로 가져와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호영이 툴툴거렸다.

 

 “에이, 사람이 정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다 죽는 바람에…. 에이, 너무 딴다.”

 

 호영의 말대로 이제 민준 옆에는 많은 반창고가 쌓여있었다. 민준은 뻥카의 달인이었던 것이다. 옆에서 경화와 준표가 과장님 최고~ 과장님 어메이징 하시네요. 달인이네, 달인! 하는 소리에 민준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리고 한 쪽에 놓인 푸 선풍기를 들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구경꾼들을 재빨리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이거 진짜 내꺼 맞죠? 다 봤제?”

 “더럽고 치사해서 안 가진다!”

 

 기분이 상한 병국은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곧 다시 들려오는 민준의 말에 도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 나 과장! 그럼 한 판 더 해요. 건전지까지 걸고.”

 “웬일이래? 김 과장이 선심을 다 쓰고?”

 

 민준은 어깨를 으쓱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또 한 번 이기는 건 전혀 문제가 없는 듯 기세등등한 몸짓이었다. 과장들은 짜증이 났지만, 다시 생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세헌은 얼른 패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때 구경꾼 사이에서 한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죄송한데, 저도 끼어도 될까요?”

 “뭐?”

 

 호영이 자신의 바로 뒤에서 난 소리의 근원지로 몸을 휙 돌렸고 거긴 민우가 서 있었다.

 

 “니 지금 장난하나.” 민준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디서 인턴나부랭이가…” 세헌도 황당한 표정이었다. “지금 네가 여기 낄 레벨이나 돼?"

 

 하지만 병국은 꽤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왜? 할 수도 있지! 인턴.”

 “네!”

 “자네 포커 좀 치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병원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아주 확률적인 단어였다. 민우는 그 단어를 이런 곳에서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정도로는 안 되지! 이길 자신 있어, 없어?”

 “자신 있습니다!”

 "그럼 해!" 병국은 씩 웃는 얼굴로 흔쾌히 말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민우는 나 과장이 무슨 이유로 끼워주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내가 따면 자기 달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은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 판에 끼어든 것 자체가 대단한 도전이었고 포커까지 하는 판에 거절은 왜 못 할까. 요즘 날이 더워져서 누구에게든 선풍기가 필요했다.

 

 “그래, 이번만 열심히 하는 거야. 열심히!”

 

 인턴에게 열심히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민우는 이제 필요한 건 최선이라는 확률적인 단어보다는 노력이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잠시 소란스러웠던 중중 외상센터 사무실은 또다시 긴장이 감돌았고 잠시 후 연달아 죽는 소리가 나왔다.

 

 “과장님! 제가 이겼네요!”

 “…그래, 니 가져라.”

 

 들뜬 목소리로 민준 앞에 두 손을 내미는 민우에게 대충 푸를 던졌지만 잘 받아낸 민우는 실실 웃었다. 그러자 병국이 살며시 일어나 구석으로 민우를 불렀다.

 

 “이민우 인턴 잠깐….”

 

 민우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걱정은 언제나 현실이 되듯 생각을 읽어낸 것 마냥 자신의 고민은 병국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거 나주면 안 돼? 원래 내거고…”

 “치사하게 왜 그래요?”

 “그러시면 안 되죠~ 룰이 왜 있어요?”

 

 몰래 엿듣고 있던 과장들이 나서서 막아주었고, 민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장들은 자기들이 가지지 못하면 차라리 인턴이 갖는 게 마음 편한 것 같았다. 곧 재인이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한두 명씩 중증외상센터 사무실을 나서기 시작했다.

 

 “아! 과장님?”

 “왜?”

 “저… 건전지….”

 “야, 인턴 선생. 니 진짜 쩐다, 쩔어. 어?” 민준은 분노에 찬 손길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뭐, 얼만데? 니 다 가지라!” 만 원짜리 두 어장이 공중에서 팔락거렸다.

 “감사합니다!”

 

 거의 집어던지듯 주는 걸 받아내고 허리 숙여 인사하는 뻔뻔한 민우였다. 주위에서 민준을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소리 내어 웃자 그런 반응을 알아챈 민준은 참나- 하고 힘 빠진 모양새로 문을 열고 밖으로 사라졌다. 늘 굳어있던 인혁도 언제 그랬냐는 듯 즐겁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