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거/엘빈나일]

개무 2017. 2. 26. 00:57

 

 

 

 

 

 “젠장!”

 

 월 시나를 넘어서 날아온 바위들에 의해 한쪽 다리가 깔리고 말았다. 괜히 최전방에 나와서 설치다가 이 꼴이 나고 만 것이다. 나일은 큰 바윗 덩이를 밀어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50m 위의 엘빈을 쳐다보았지만 금빛으로 뒤덮인 뒤통수는 계속 반짝이기만 했다. 도저히 움직이지 않는 바위 아래에서 용을 쓰다 그냥 드러누워 버렸다. 이젠 허리를 들 힘도 없었다. 이렇게 또 다른 바위들이 날아와 머리통이 터지는 상상을 했다. 거인에게 뜯겨 죽느니 차라리 한방에 터져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 아내도 거인에게 죽은 마당에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었다. 멍청히 누워 금빛의 뒤통수를 보자니 멀리서도 눈이 부셨다.

 

 다리는 이미 감각이 사라져버렸다. 마지막으로 옛 친우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해를 가리기 위해 손을 들어 이마에 올리자 갑자기 엘빈의 푸른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 손을 치우자 엘빈은 다시 건너편을 쳐다보았다. 그래 조사병단의 작전이 중요하겠지. 언제부터 이렇게 욕심이 없었다고 얼굴이라도 봤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떠올렸다. 벽 너머에선 계속해서 큰 소리가 났다. 거인들이 리바이 병장에 의해 도륙되고 있는 소리일 것이다. 빌어먹을 거인들….

 

 문득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안주머니를 뒤져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죽음이 확실해지자 이상하게 여유로워졌다. 팔이 멀쩡해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감사할 정도였다. 올려다 본 하늘은 눈치 없이 맑았다. 붉은 피로 뒤덮여있을 땅에 비해 너무나도 깨끗했다. 딱 한 번 뒤돌아 본 엘빈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저놈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사병단에 들어갔을까. 예전에 말했던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아직도 조사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럴만한 인물이었다. 절대 이길 수 없었던 늘 한 발자국 앞서 나가던 놈을 처음으로 앞서 나간 것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곧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죽을 마당에 그런 건 하등 도움 되지 않았다. 벽 너머에서 죽어간 불쌍한 군인들이 엘빈의 발 밑에 산을 이루고 있다. 그런 큰 짐을 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이기지 못했던 걸까. 두서없이 생각을 하던 나일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출혈이 심한지 점점 더 어지러워져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아봐주는 건 사치라고 생각하며 눈이 절로 감기었다.

 

 문득 푸른빛을 본 것 같았다.

 

 

*

 

 

 푸른 하늘과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

 

 “정신이 드나?”

 

 병단이 돌아오면 늘 먼저 들렀던 의무실의 천장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옆에 앉아있는 푸른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도대체 그때 거긴 왜 나와있었던 거야? 헌병단장이 무엇 때문에?”

 “…자네가-.”

 

 나일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돌아오면,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하려 했지.”

 “굳이 그 타이밍에?”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엘빈은 그런 그의 이마를 쓸어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서류가 남아서 가봐야 할 것 같네.”

 

 나일은 대답 대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뒤로하고 다시 잠들었다.

 

 

*

 

 

 꽤 시간이 지난 후 나일은 목발을 짚고 걸어 다니는데 익숙해졌다. 탑 10에 들어갈 만큼 운동신경은 조금 남아있었기에 재활치료는 막힘이 없었다. 남은 서류 정리를 한다던 엘빈은 그 이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직 거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마당을 걷다 말고 길가를 쳐다보니 엘빈이 지나가고 있었다. 느린 발걸음을 보니 뭔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부르려다 더 이상 친구도 아니고 찾아와 줄 의무도 없는 사람을 부른다는 것이 우스워 들려던 손을 내렸다. 왠지 피곤해져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붕대도 풀고 퇴원 한 나일은 곧장 집으로 갔다. 쓸쓸하지만 그래도 집이 편안해서 마음이 한결 편했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먼지가 쌓인 집을 대충이나마 청소하자 하루가 다 가버리고 온몸이 뻐근했다. 너무 무리한 것 같았다. 침실로 들어가려던 그때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에서 나던 규칙적인 소리는 곧 사람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뭐야?”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오랜만에 맡으니 냄새에 취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가까이 다가오던 엘빈은 제 힘으로 서 있을 생각이 없는지 고꾸라졌다. 받아줄 여력이 전혀 안되는 나일은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바위 다음으로 무거운 것에 깔려 끙끙 앓자 엘빈은 그를 자신의 아래에 가두고 내려다보았다.

 

 “뭐 하는 짓이냐. 술에 떡이 돼서는. 자네 답지 않….”

 “미안하네.”

 “…어?”

 “내가 봤을 때 바로 의무실로 갔었으면 다리는 멀쩡히 붙어있었을 텐데. 미안하네.”

 

 어둠 속에서도 엘빈의 눈동자는 푸르게 빛났다. 햇살 아래와는 다르게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목에 얼굴을 처박은 엘빈은 그 후로 움직이지 않았다.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나일은 몇 번의 노력 끝에 간신히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옮길 수는 없어서 그냥 그대로 둔 채 담요 하나만 덮어주고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

 

 

 몸이 불편해진 후로 더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알아서 눈이 떠질 때까지 잠을 자던 나일은 문득 어디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몸이 뻣뻣하게 굳어왔다. 눈을 번쩍 떴다. 뒤에서 술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다. 엘빈이라는 걸 알아채자마자 나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곧바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예전에 적었던 거 이제야 올려봅니다...

 

* 원래 만화는 잘 안보는데 작년 말에 어쩌다 보게 된 진격의 거인...

당연한 수순으로 나일이라는 캐릭터가 취향저격... 근데 애니는 안봐서요 ㅜㅜ

목소리도 모르고 진짜 그냥 얼굴이랑 관계만 대충 아는 정도입니다.

엘빈이랑 친구~ 훈련소 동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