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네] 우중충한 날

개무 2017. 2. 19. 15:17

 

 

 

 

 

 오늘같이 짙은 먹구름이 낀 날은 보통 범죄가 더 일어나리라 생각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범죄율은 더 줄어들곤 했다. 해리는 아마 범죄자들도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우중충한 날에는 움직이기 귀찮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사무실에 앉아 멍청하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엊그제 같이 선명하기만 한 그 치열했던 전쟁의 막바지를 떠오르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하늘이 그저 흐리기만 했던 건지 전쟁의 여파로 흙먼지와 어둠의 기운이 하늘을 가득 메운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중충하긴 마찬가지여서 모두의 마음을 울적하게 했었다. 그때 그 순간도 울적하기 짝이 없는 하늘이었다.

 

 

*

 

 

 모든 것이 끝난 직후, 문득 해리의 머릿속에는 홀로 분투하며 외롭게 전쟁을 맞이했던 한 남자가 떠올랐다. 어딜 가냐고 붙잡는 친구들의 물음에도 잠시 다녀오겠다며 열심히 뛰어 도착한 곳은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이었다. 물론 해리가 아량이 대단히 넓은 영웅이 아닌 그저 평범한 소년이기 때문에 아무리 스네이프가 자신을 위해 희생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미워했던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미워하는 감정은 여전했지만 그 대신 이상하게 떨떠름한 뭔가 기묘한 감정도 함께 피어올랐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마지막으로 본 곳에서 한결같은 자세로 피 웅덩이 속에 주저앉아 있었다. 해리는 그를 보고 느끼는 이 감정을 정의할 수 없었다. 멀뚱히 서서 지켜보다 가까이 다가갔다. 시체를 수습해야겠지. 해리는 자신의 손에 묻었던 그 뜨거운 피의 감각을 잊지 않았다. 지금은 식어 빠져 말라가고 있었지만 그도 결국은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어린 시절 그 거대한 박쥐 같던 남자도 아니고 사람을 개미 보듯 한 볼드모트도 아닌 해리와 마찬가지로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남자였다.

 

 그러나 그는 해리와 다르게 누구도 곁에 있지 않았다. 철저히 혼자였다. 아마 그가 느끼기에 덤블도어는 그저 명령을 내리는 사람에 불과했기에 자신을 지탱해 줄 사람은 오직 릴리 에반스가 전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실제로도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고 확신했다. 되돌리지 못할 찰나의 실수로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독한 현실을 또 다른 초록색 눈으로 대신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을 것이다.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해리와 마찬가지로 둘은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했다. 그에게 해리 포터란 릴리의 자식이기도 하지만 그 초록색 눈을 제외하면 빌어먹을 제임스 포터 주니어나 매한가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리는 이런 남자를 불쌍하게 여겼다. 그가 했던 사랑이 어떤 종류든 간에 어쨌든 그는 사랑을 했고 죄책감을 느끼며 후회하고 속죄했다. 이 남자가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 용서를 해 줄 누군가는 오직 해리 포터가 유일했다. 결국 그는 해리의 생각만큼 몹시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어린 시절의 분노를 다음 세대의 어린아이에게 앙갚음을 한 건 어른으로서 전혀 좋은 태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해리는 아무래도 그의 정신적인 부분 어느 한구석에는 여전히 학창 시절에 머물러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시리우스도 그랬고 루핀 교수님도 그랬다. 그러나 다른 이들과 다르게 스네이프에겐 그런 것을 극복할 만큼 행복한 일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스네이프?”

 

 불행하고 불쌍한 남자는 당연하게도 요지부동이었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생각하면 할수록 볼드모트만큼이나 아니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그 둘을 동시에 증오했던 사실이 조금은 무안했다. 사실 해리는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을 알았다. 어색함만이 하늘을 뚫었겠지. 그래도 그가 지금까지 몰래 해 온 행동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해리는 그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의 몸은 온통 축축하기 짝이 없었다. 전부 피였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아무리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시체를 그냥 내팽개쳐 둘 만큼 냉정하진 않았다.

 

 마법을 써서 들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런 말은 상당히 이상하지만 해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네이프를 느껴보고 싶었다. 거추장스러운 로브 속에는 말라빠진 몸뚱이가 있었다. 그건 딱딱하게 느껴졌고 피가 다 빠져나간 얼굴은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실수로 너덜너덜한 목이 덜렁 떨어져 나가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해리는 완전히 망가져 폐허가 되어 우울해 보이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호그와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