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무스네] 목도리
상당히 추워진 날씨에 문득 지하 던전에 있을 남자가 떠올랐다. 여름에도 서늘한 기온을 자랑하는 지하 던전은 겨울엔 특히나 혹독한 추위를 머금어 학생들도 수업만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빼는 최악의 교실로 뽑히는 곳이었다. 루핀은 때마침 다가온 주말을 의미 없이 날리고 싶지 않아 없는 돈을 끌어모아 호그스미드로 향했다.
겨울을 준비하는 호그스미드는 부산스러웠다. 쇼윈도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목도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선보이고 있었다. 교장 선생이 좋아할 만한 목도리도 보였지만 루핀이 찾는 건 따로 있었다. 따분한 검은색만을 고집하는 스네이프에게 저런 요란한 목도리를 건넸다가는 당장 주문이 날아올게 뻔했기 때문에 오직 민무늬의 검정 목도리만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자신의 재정 상태에 적합한 목도리를 찾은 루핀은 얼른 그걸 집어 들었다.
루핀은 떨리는 마음으로 스네이프의 사무실 문 앞에 섰다. 큰맘 먹고 구입 한 목도리를 여기까지 가지고 오면서도 다시 환불을 해야 하나 얻어맞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돈을 더 지불해가며 검은색 대신 흰색을 사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검정 목도리를 손에 쥐는 순간 눈에 들어온 흰 목도리는 마치 자길 사달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 계산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루핀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닫힌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몇 번을 두드려도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새 어디라도 나간 것 같았다. 루핀은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자신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
한 시간마다 스네이프의 사무실을 찾아가던 루핀은 벌써 네 번째 방문에 실패하고 지하 던전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마주 오는 스네이프를 본 루핀은 너무 기뻐 곧장 달려가 끌어안았다.
“윽-!”
“어?”
너무 세게 안았나 싶어 얼른 떨어져 앞의 남자를 봤지만 그게 문제인 것 같진 않았다.
“대체 어딜 다녀… 설마….”
스네이프는 대답 대신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루핀 역시 말없이 그를 따라 사무실로 향했다. 쓰러지듯 소파에 주저앉아 눈을 감는 스네이프에게 담요를 소환해 덮어주고 서둘러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서서히 훈훈해지는 공기에 마음이 한시름 놓였지만 스네이프를 보는 순간 그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뭐라도 가져다줄까?”
“아니.”
이런 상황에서도 단호하기만 한 스네이프가 조금은 원망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그에게 좀 더 편안히 여길 수 있는 존재이길 바랐다. 그의 옆에 앉아 조심스럽게 한 손을 잡았지만 의외로 떨쳐내지 않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차가운 손을 다정하게 감싸 쥐었다. 그 모임에서 주문이라도 맞고 온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자 스네이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루핀은 서둘러 그를 붙잡았다.
“왜?”
“내 사무실에서 물도 마음대로 못 마시는 건가?”
“내가 가져다주겠네.”
“됐어.”
“그냥 앉아있게.”
스네이프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건 루핀이었다. 목이 탔는지 금방 한 컵을 다 마신 스네이프는 다시 소파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여긴 왜 온 건가?”
먼저 말을 걸어와 당황한 루핀은 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귀에 들렸다.
“아, 날씨도 추워지고 해서……. 받게.”
루핀은 소파에 나뒹굴고 있던 상자를 들어 스네이프에게 건넸고 내용물을 본 스네이프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즐거워 보였다. 루핀은 그 얼굴을 보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없는 형편에 속 좀 쓰렸겠군.”
“흰색도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라 별다른 충격은 받지 않았다.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반응이었다.
“오, 그러지 말고 한 번 둘러보게.”
멀뚱히 들고 있는 걸 대신 집어 목에 둘러주었다.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모습에 루핀은 조금이라도 후회했던 자신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스네이프는 훈훈한 방 공기에 답답한지 입까지 가린 목도리를 내렸고 그 틈을 타 루핀은 얼른 얼굴을 디밀었다. 스네이프에게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