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민준] Delusion 2

개무 2017. 2. 19. 14:20

 

 

 

 

 

 민준의 하루는 오늘따라 병원에 출근할 때부터 퇴근 할 때까지 주구장창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병원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에 도착하는 내내 욕을 지껄일 수밖에 없었는데, 병원 주차장을 나와 코너를 도는 순간 갑자기 옆에서 차가 튀어나와 하마터면 퇴근하자마자 병원으로 드러누워서 다시 출근할 뻔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차에 비해 민준의 차가 훨씬 속도가 느린 덕에 재빨리 멈출 수 있었다. 작은 충돌까지는 막을 수 없었기에 헤드라이트가 깨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집으로 가는 동안 경찰에게 걸려 벌금이나 물지 않을지 걱정하며 도망간 뺑소니 범에게 욕을 했던 것이다.

 

 “미친놈이 갑자기 튀어나오고 지랄이야 지랄이….”

 

 쉴새없이 욕을 주절대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늘도 역시 인혁은 오지 않을 듯 싶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인혁이 웬일로 퇴근을 했다. 하지만 그는 민준이 쳐다봐도 본채만채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고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민준은 살짝 긴장했다.

 

 잠시 후 티비를 끄고 소파에서 일어나 인혁이 들어간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민준은 깊은 한숨을 쉬고 침대 한 쪽에 앉아 인혁이 나오길 기다렸다 멍하게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곧 욕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민준은 고개를 급히 들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는 인혁을 불러세우며 붙잡았다.

 

 “최인혁.”

 

 뿌리치고 나갈 줄 알았던 인혁이 뒤돌자 오히려 당황한건 민준이었다. 멍청하게 서 있자 인혁이 말했다.

 

 “뭐, 할말 있으십니까?”

 “아- 그,”

 

 민준이 뜸을 들이자 인혁은 붙잡힌 손을 떼어놓으며 말했다.

 

 “할 말 없으시면 놓으시고 그 뭐, 주무실려면 주무십쇼.”

 “아니, 저… 아까 낮에는 내가 미안했다.”

 “아닙니다. 제가 실수했잖습니까.”

 

 인혁의 표정은 피곤한 표정 그대로였는데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민준은 긴장을 넘어 아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말이 너무 심했다. 사람들 다 보는데… 생각이 짧았다.”

 “아닙니다. 과장님께서 한두번 그러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민준은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평소 같았으면 ‘괜찮습니다.’ 하며 살짝 웃어줬을텐데, 오늘은 많이 다른 행동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 불러세워졌던 남자는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았다. 곧 탁자 위에 펼쳐져 있는 여러 전공 서적과 노트북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민준은 슬슬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껴 그대로 침대 위에 드러누워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대며 이런 저런 생각하기도 잠시 곧 담배를 챙겨들고 발코니로 나가 문을 닫았다. 인혁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제 할일에만 열중했다.

 

 의자에 앉아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덕분에 차가운 바람이 폐까지 들어와 속을 시리게 만들었고 복잡한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해주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난간 너머로 보이는 광안대교를 보며 아무 생각없이 의자 깊숙히 몸을 파묻은 채 한쪽 팔을 탁자에 괴어 머리를 받쳤다. 남은 팔은 의자에 대충 걸친 채 멍청하게 늘어져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서서히 졸립기 시작했다. 정확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진 모르지만 수북히 쌓인 꽁초를 보며 대충 한두 시간 즈음 지났다고 짐작했다. 유리창 너머로 훔쳐본 인혁은 여전히 빌어먹을 노트북을 붙잡고 있었다.

 

 민준은 그가 정말 화가 난 걸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생명에는 그게 어떤 사람이든 정도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민준이었고, 환자라면 죽고 못사는 인혁이라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인혁보다는 오히려 민준에게 타격이 더 컸다. 평소 같으면 어서 들어오라고 했을 사람이 전혀 거들떠도 보지 않자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모든게 다 귀찮아져 생각하기를 멈추자 도저히 잠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젠 시원함을 넘어 닭살이 돋을 정도로 추운데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안락해져버린 딱딱한 의자를 벗어나기가 싫었다. 오들오들 떨던 민준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탁자에 괴고 있던 팔을 베고 잠들고 말았다. 조금 전에 불을 붙여둔 담배 한 개피가 손가락에 끼어 바람이 불 때 마다 빨갛게 달아오르며 위태롭게 흔들렸다.

 

 ‘여기로 보내세요!’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공간 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응급실 쪽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병원에 메아리쳤다. 삐- 하는 듣기 불편한 기계음이 나는 순간, 일순 모든 소리가 멈추었고 모든 움직임도 함께 멈추었다. 고요한 정적에 모든 것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다. 마치 수술대에 누워서 바라본 무영등 빛처럼 주변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모두가 민준을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심장이 제 기능을 멈춘 채 죽어있던 베드 위 아이도 눈을 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나 이 꿈은 늘 지켜내지 못했던 어린 아이가 그 얼굴 그대로 키만 자라나 민준이 집도했던 수술 그대로 진행했다. 정말 기괴한 악몽이었다. 그는 수술대에 널부러져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가쁜 숨을 헐떡이며 꿈에서 깨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 사람들 무리 뒤로 한 인영이 보였다. 민준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혁이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민준은 직감적으로 곧 자신의 꿈이 곧 깨어나리란 걸 알았다.

 

 ‘최인혁!!!’

 

 딱히 이유는 몰랐지만 민준은 힘을 짜내어 지나가는 남자의 이름을 외쳤다. 저 남자라면 자신을 구해 다시 몸을 고쳐주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때문인지 작은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인혁은 곧바로 민준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나 신기해하는 것도 잠시였다. 남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고개를 다시 돌려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민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민준은 딱딱히 굳은 채 수술대 위에 누워 외상센터 문을 열고 문 너머로 사라지는 인혁을 바라보았다. 점점 그를 죽여가는 손길에 격한 발버둥을 치며 기어코 그들에게서 벗어났다. 불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하며 외상센터 문을 벌컥 열었다. 이곳은 새하얀 병원과는 다르게 캄캄했지만 방 한 가운데 멀뚱히 서 있는 남자는 똑똑히 보였다.

 

 ‘최인혁!’

 

 민준은 인혁을 부르며 거칠에 어깨를 잡아돌렸다. 하지만 꿈 속의 인혁은 담담할 뿐이었다.

 

 ‘과장님.’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좁은 공간을 울렸다.

 

 ‘니, 니 왜 내가 부르는데-’

 ‘과장님.’

 

 인혁은 그를 재차 부르며 말을 끊었다.

 

 ‘잘못에 대한 대가는 치루셔야하지 않습니까. 죽은 환자는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눈을 깜빡였다.

 

 민준은 또다시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다. 이번엔 인혁이 민준의 배를 뒤지고 있었다. 아이는 옆에 가만히 서서 보고만 있었다. 그때 왼쪽 손가락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배가 다 열린 몸으로 벌떡 일어나 손을 바라보았다. 눈을 뜬 민준은 의자에 앉아있었다. 손가락을 보니 담배가 필터까지 타들어와 그자리에 물집이 잡히고 말았다. 화들짝 놀라며 손사레를 쳤다. 젠장!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떨어진 담배 꽁초를 재떨이에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잔뜩 긴장한 몸에 힘이 빠지며 축 처지자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그는 목덜미는 손으로 거칠게 쓸어내었다. 불어온 바람이 땀을 식히며 온 몸에 추위를 가져왔다. 민준은 마른 세수를 하다 그대로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몸이 떨려왔다. 인혁을 떠올릴수록 꿈이 함께 떠올랐다.

 

 순식간에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간신히 이끌어 집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공기가 몸을 덮쳐와 온 몸이 저릿저릿했다. 인혁을 쳐다보았지만 여전히 제 할 일에 몰두해 있었다. 하여튼 대단한 워커홀릭이다. 욕실로 들어가 찬장에서 간단한 소독약을 상처에 부었다. 쓰라린 느낌이 손가락에서부터 퍼져나갔다. 꿈이 자꾸 생각이나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한동안 꾸지 않던 꿈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또다시 꾸게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민준은 반창고를 붙이고 나자 샤워가 하고 싶어졌다. 그대로 옷을 벗고 물을 틀어 몸을 적셨다. 따뜻한 물이 언 몸을 녹여주는 것 같았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을 가로질러가자 인혁의 눈길이 손가락에 닿는 게 느껴졌지만 그 눈길은 금방 사라졌고 자신은 방에 들어와있었다. 지친 민준은 곧바로 잠이 들었고 인혁이 같은 침대에서 잤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일어났을 땐 이미 출근하고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준은 인혁이 같은 침대를 쓰지 않았다는 걸 확신했다. 또다시 꿈이 떠올랐다. 그는 아침부터 짜증이 가득한 상태로 출근했다.

 

 “경화쌤, 진짜 미안한데 오늘 당직 내 대신 해주면 안되겠나?”

 

 결국 민준은 경화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원치 않는 방향으로 발전을 해나가는 악몽은 잊을만 하면 떠올라 안그래도 지긋지긋한 병원을 더욱 벗어나고 싶게 만들었다. 가끔 어지럽기까지했다.

 

 “과장님. 아, 오늘 제가 진짜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요- 미룰 수가 없어요….”

 

 눈에 띄게 어두워지는 민준의 얼굴을 보는 경화의 표정도 편하지 않았다. 어색한 공기가 주위를 감돌았다.

 

 “아 맞나……. 진짜 안되겠나?”

 “죄송합니다. 과장님 다음 번에 부탁하시면-”

 “아니다. 어쩔 수 없지. 데이트 하러가나?”

 

 괜히 밝은 척하며 평소와 다르게 차려입은 펠로우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어떻게 아셨어요! 잘 되라고 기도라도 해주세요!”

 “알았다, 수고해라.”

 

 민준은 다시 사무실로 터벅터벅 돌아왔다. 머리도 지끈거리는게 영 몸이 좋지 않은지 조금이나마 자고 싶어 의자에 몸을 깊숙히 기대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