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수혁텀 6

개무 2017. 2. 19. 13:31

 

*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 개봉작.




 

 

<15>

 

 붙잡힌 김태원의 잔당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결국 그의 존재만으로도 김태원의 생존이 확증된 것이다. 사지가 멀쩡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수혁에게 김태원의 생존은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였다.

 

 “앞으로 각자 알아서들 조심히 행동하고 다녀라. 김태원이 내 손에 잡히거나 죽기 전까진 끝나지 않을테니까.”

 “우리는 알아서 할테니 그 쪽이나 신경 쓰쇼.”

 

 수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희들은 상황실로 가봐. 나는 먼저 간다.”



<16>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선배는 수혁을 생각해서 굳이 불러낸 것이었고 그 이후의 작업에 대해선 권한 밖의 일이었다.



<17>

 

 수혁은 더욱 피곤했다. 집에서 통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간만에 잘 잤다며 좋아했던게 오래전 일인것만 같았다. 주차를 하고 나가려다 말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걷는 것 보다 차라리 운전하는게 훨씬 나았다. 오토라 천만 다행이지. 큰 숨을 내뱉으며 차에서 나와 계단으로 향했다. 거지같은 계단. 한숨이 늘었다. 다리를 심하게 쓰지 않으니 확실히 전 보다 상태가 나아진게 눈에 보였지만 여전히 말썽이었다. 얼마나 그들과 지내야 할 지 몰라 앞날이 깜깜했다. 마치 가시방에서 생활하는 기분이었다. 특히 이해진의 행동들은 물리적이라 지금 상태에선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수혁은 비밀번호를 입력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거실에 불을 키고는 조심스럽게 멈춰섰다. 닫히는 소리가 나야 할 문이 조용했기 때문이다.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김태원?”

 “잘 아는 군기래.”

 

 등 뒤에서 들이댄 총구가 옆구리를 쑤셔왔다. 서늘한 감각이 소름끼쳤다. 긴장감에 서서히 몸이 뻣뻣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김태원의 상태는 알 수 없었지만 의외로 생각보다 좋은 것 같았다.

 

 “내가 실수했군.”

 “조장답지 않게 눈치가 느리구만. 비겁한 배신자새끼.”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수혁의 낮은 목소리가 조용히 퍼져나왔다.

 

 “난 조국을 배신하지 않았다. 내 조국은 바로 여기니까.”

 “뭐…?”

 “지적 수준이 의심되는군. 이 멍청한 빨갱이 새끼야!”

 

 수혁은 태원에게서 빠르게 벗어나며 총을 뽑아들었다. 그럴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새 잊고 있던 다리의 부상이 문제였다. 휘청이는 순간 뽑아든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총알은 적의 어께를 스치고 지나갔을 뿐, 쭉 자신에게 겨누어져 있던 총구에서 불꽃과 함께 쏘아진 총알만이 적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그것은 박히지 않고 살을 찢고 나가 흰 와이셔츠를 삽시간에 붉게 물들였다. 수혁은 본능적으로 한 손을 들어 옆구리를 감쌌다. 결국 넘어진 수혁을 제압해버린 태원이었다.

 

 “남조선 실력이 요것밖에 안되는 기야?”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에 수혁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입을 꾹 닫았다. 이런 병신 같은 상황까지 온 자신을 욕할 수밖에 없었다. 잡생각에 정신이 팔려 긴장을 늦춰 이런 꼴을 당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최고로 험악해진 얼굴을 한 태원이 총을 겨눈 채 내려다보고만 있자 오히려 수혁이 재촉했다.

 

 “안 쏴?”

 

 태원이 그 말을 듣고도 잠시 동안 그 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다 흉측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미소를 지었다.

 

 “배신자를 편히 보내줄 순 없디 않갔어?”

 

 수혁은 종내엔 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했지만 이것과는 정반대의 상황만을 예상했었다. 복수도 자신이 해야했고 고통스럽게 보내주는 것도 자신이 해야했다. 제 아비를 죽인 원수에게 이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세 조장들이 그리웠다.

 

 “날래 일어나라우.”

 

 김태원이 들고 있던 총이 위협적이게 까딱거렸다. 수혁은 힘겹게 일어섰다. 인내심있게 기다리던 태원은 현관문 고리를 걸으라고 했다. 현관문 고리 주변에 피가 묻어 벌겋게 변해버렸다. 태원은 수혁을 거실로 몰았다. 수혁은 이 자가 어떤 짓을 할 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살해당하던 그 날 이후로 처음 느끼는 두려움이었다. 죽음에 직면한 두려움보다 그 원인을 제공하는게 김태원이라는 것이 더 큰 두려움이었다. 이겨냈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충격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었던 것이다.

 

 “기라!”

 “크윽!!”

 

 태원은 굳이 수혁의 왼쪽 다리의 오금을 발로 차 탁자에 처박히게 했다. 덕분에 땅에 찧은 무릎의 고통도 함께 느껴졌다. 탁자에 상체를 엎드린 수혁의 팔을 뒤로 모아 그의 넥타이로 단단히 묶은 뒤에야 총을 치우는 태원이었다. 수혁은 딱딱한 바닥에 닿아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무릎도 아팠고 피를 흘리는 옆구리도 아파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도대체 뭘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태원이 입을 열었다.

 

 “너 같은 남조선 새끼들은 어떻게 다뤄야 좋은지 잘 알지.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게 될거이.”

 

 수혁은 이왕 죽을거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죽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조장들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예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알다시피 반역자 새끼 주제에 조장까지 한 몸이야.”

 

 수혁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제발 현실로 일어나길 바랐다.

 

 “쉽지 않을거다.”

 “아주 자신만만 하구만.”

 

 수혁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봤자 각종 고문들일 게 뻔하다. 벨트를 푸는 손길에도 막연히 채찍질을 하려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사이 바지 지퍼를 내리는 손길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속옷까지 한번에 잡아내린 태원이 우악스럽게 엉덩이를 붙잡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