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수혁텀 5

개무 2017. 2. 19. 13:22

 

*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 개봉작.




 

 

<11>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북으로 갈건가?”

 

 남루한 행색을 한 자는 묵묵부답이었다.

 

 “대답해!”

 

 책상을 내려치는 큰 소리에도 남자는 여전히 입을 꾹 닫은 채였다.

 

 “…이해한다. 명분이 없겠지.”

 

 지저분한 남자를 마주한 요원은 괜히 실실 쪼개는 것마냥 어색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지었다.

 

 “아무리 미친놈이어도 북으로 다시 돌아가려하진 않겠지?”



<12>



 “예?”

 

 수혁의 머릿속에 이해하지 못한 문장이 둥둥 떠다녔다. 일단 한국어는 분명했다.

 

 “그 빨갱이 새끼들 세 명이랑 같이 살라고.”

 “아니, 저 선배 그래도….”

 “5446부대잖냐. 만만하게 볼 상대들이 아니야.”

 “아, 굳이 그렇게 까지….”

 

 수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그에게 선배라는 남자는 여전히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지독한 농담이길 바랐지만 수혁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런 수혁이 불쌍하긴 했는지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말했다.

 

 “야, 잘 됐지 뭐~ 감시하는 김에 치료 좀 꼬박꼬박 받으러 다니고, 어?”

 

 여전히 암담해하는 수혁을 손등으로 가볍게 툭 쳤다.

 

 “제발 집구석에 좀 처박혀 있어라, 엉? 자꾸 처 싸돌아다니지 말고. 알겠냐?”

 “…알았어요.”

 

 결국 수혁은 그 날 저녁에 곧장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걱정과 달리 해진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처음부터 꽤 넓고 방도 여러개 있는 집을 내어준다 했더니 애초에 자신을 여기에 잡아넣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괘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까라면 까야지.

 

 

*

 

 

 이미 이들은 생활 패턴이 잡혔는지 일반 시민들처럼 분주한 아침을 맞았다. 다양한 연령대의 남자만 득실거리는 웃기는 가족 구성이었지만 간만에 느끼는 북적북적함이 그리 나쁘지 않아 약간 들뜬 기분을 느끼며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등 뒤에서 급히 다가오는 발걸음이 들렸고 곧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수혁은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억!”

 

 정색하고 있는 해진이 보였다. 일부러 목발을 발로 치고 지나간 것이다.

 

 “좀 똑바로 다니지? 앞에서 걸리적거리지 말고.”

 “리해진!”

 

 어느새 온 것인지 원류환이 다가와 있었다. 금새 한발짝 물러서는 해진은 다녀오겠다고 웅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미안하….”

 “됐다. 이런 일에 일일히 사과하지 마.”

 

 수혁은 물 한 잔 대신 아예 페트병 여러개를 옆구리에 끼고 낑낑대며 방으로 향했다. 도와주겠다는 말에도 신경 쓰지 말고 할 일이나 하라고 대꾸하며 기어코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진통제를 먹었다. 알량한 자존심에 더 이상 나약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한바탕 일 아닌 일을 치루고 나니 온 몸에 힘이 빠져 잠이 쏟아졌다. 진통제도 한 몫 했는데 다음에 병원에 가면 수면제 성분이 없는 걸로 받아내리라 다짐하며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저릿한 한 쪽 다리부터 허리까지 아니 사실 온 몸이 묵직했다. 침대로 빨려들어가는듯 아찔한 느낌이 들며 서서히 의식이 멀어져갔다.



<13>



 류환은 집을 나서며 수혁에게 이를 알려야하나 생각하며 집 안을 쳐다보았다. 국정원 요원이 굳이 같이 살게 될 때에는 감시라는 이유 밖에 없었지만 괜한 오지랖인가 싶어 몸을 돌려 나가려하다가도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굳게 닫힌 방문 앞에 섰다. 사실 얼굴을 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두어번 더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답은 없었다. 그냥 열어버리자 싶어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렸다.

 

 “…자나?”

 

 탁자 위에 진통제가 보였다. 수혁이 힘겹게 눈을 뜨는 것이 보였다. 날카로운 눈빛이 어느 정도 수그러든 수혁의 얼굴은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축 처진 수혁이 미간을 찌푸리는게 보였다.

 

 “뭐.”

 “나간다고 말해야할 것 같아서.”

 

 별 일이라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수혁을 보고 있자니 민망해져 그 말을 끝으로 얼른 집을 나섰다. 수혁은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할 일이 많았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4>



 시계를 본 수혁은 깜짝 놀랐다. 벌써 저녁 8시가 넘어버린 것이다. 간만에 푹 자서 그런지 몸은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더 자려다 이러다간 평생 잠들 것 같아서 결국 몸을 일으켰다. 멍하니 앉아있길 잠시, 곧바로 집으로 가져온 서류들을 정리했다. 휴대폰을 보니 이해진의 이름과 함께 선배에게 전화가 몇 통 와 있었다. 정신이라도 차리자 싶어 욕실에가 찬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거울을 통해 물이 뚝뚝 흐르는 얼굴로 전화를 들었다. 곧장 연결된 상대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수혁이 먼저 다짜고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이 새끼 뭐하다가 지금 전화를 해? 몇 신지 알아!!”

 “죄송합니다.”

 

 수혁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파리한 안색을 훑어보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선배의 목소리를 조용히 들었다.

 

 “하여튼 이 새끼 다리 병신되더니 빠져가지고 말이야! 정신 똑바로 차려, 알았어?”

 “알겠습니다.”

 “김태원 밑에 애 하나 잡았으니까 궁금하면 와라.”

 

 수혁은 전화가 끊기기 직전 전화 너머에서 작은 한숨 소리를 들었다.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려 문을 여는 순간 올라가려던 누군가와 부딪혔다.

 

 “미안합니다.”

 

 수혁은 누구와 부딪혔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사과하고는 서둘러 움직였다. 국정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두 조장이 도착해 있었다. 수혁은 자신을 거치지 않고 연락을 받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둘 뿐이야. 한 명은 어디갔어?”

 “그쪽이야말로 왜 혼자와? 데리러 갔는데.”

 “아무도 못 봤는데….”

 

 잠시 후 해진이 굳은 표정으로 걸어들어왔다.

 

 “이 간나 새끼가 어디서 엿을 맥여?” 해진이 성큼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먼저 연락을,”

 “누가 쳐 자빠져 자랬나?”

 

 수혁은 안그래도 피곤한 마당에 고작 고등학생 밖에 안되는 애를 붙잡고 말싸움을 하고 싶진 않았다. 한숨만 내쉬며 선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버리자 해진은 더 약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