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수혁텀 3

개무 2017. 2. 19. 13:19

 

*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 개봉작.




 

 

<6>



 수혁은 빌어먹을 다리 덕분에 피곤이 쉽게 찾아왔다. 곧 조장들이 집에 도착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쏟아져오는 잠을 참을 수 없었다. 소파에 눕듯이 앉아있으니 저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

 

 

 류환은 소파에 쓰러져있는 수혁을 보고 급히 다가갔지만 잠들어 있다는 걸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았다. 방에서 담요를 가져와 덮어주자 곧바로 눈을 뜨는 수혁이었다. 눈을 몇 번 꿈벅이며 둘러보자 달랑 혼자 서 있는 류환이 보였다.

 

 “아, 미안하다. 흠-”

 

 잠겨버린 목소리가 눅눅함이 뭍어나는 묵직함을 떨구어냈다. 잠시 말을 멈춘 수혁은 누가 봐도 아직 잠에서 덜 깬 것 같이 보였다. 멍하니 앉아 앞에 서 있는 류환의 무릎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머지는 아직 안온건가?”

 

 수혁이 느릿한 말투로 물었다. 여전히 먹먹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음미하며 류환은 한박자 늦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조금 늦을 것 같소.”

 “기다리도록 하지.”

 

 눈길을 옮겨 집 안 여기저기 둘러보던 원류환은 이내 창밖을 노려보듯 시선을 고정시킨 채 넌지시 물었다.

 

 “다리 회복 속도가 꽤 느린 것 같은데 많이 심각한가?”

 

 여전히 류환은 수혁의 앞에 서서 먼 곳 어드메를 바라보았다. 수혁은 가만히 생각했다. 앉거나 누워 있어도 아릿하게 느껴지는 미미한 통증은 신경질나게 하는데 선수였다. 손을 들어 다리를 살살 쓸었다.

 

 “자주 움직이니 어쩔 수 없는거지. 게다가 그 쪽 조장 한 명이 친절히 관심 가져준 덕분 아니겠어?" 수혁은 그때의 고통이 다시끔 느껴지는 착각이 들었다. "그것도 두번이나 말이지….”

 “그건 미안하게 됐소.” 류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과했다.

 “…내가- 아니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라.”

 

 수혁은 괜시리 짜증이 났다. 류환은 내심 하려던 말이 궁금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무어라 입을 열기 무섭게 해랑이 해진과 함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아이고! 국정원 나리도 계셨구만기래.”

 

 순식간에 소란스러워 지는 분위기에 수혁은 피곤함을 느꼈다. 한숨이 나오려 했지만 속으로 삼키며 이번엔 완전히 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앉아봐, 다들.”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저도 모르게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그러자 류환의 손이 움찔거렸다.

 

 “거, 힘들어 보이는데 그쪽이나 좀 앉지?”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다.” 수혁은 류환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마지막?”

 

 서수혁은 내키지 않은 듯 바로 입을 열지 않았지만 곧이어 들리는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나한테 연락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바로 국정원으로 연락해라. 아마 그 이후에 다른 연락처를 알려줄거다."

 

 수혁은 세 남자를 둘러보았다.

 

 "그럼 앞으로 알아서 잘들 하길 바란다. 뭐, 이 집은 너희들이 살 집이니 이것도 알아서 하고.”

 “그럼 김태원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해진이 말했다.

 “…나는 더 이상 관계가 없다.” 수혁은 조금 답답해 보였다. “기관에 직접 물어봐.”

 

 수혁은 느린 발걸음으로 뒤돌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해랑이 다가와 어깨를 잡아돌리자 생각치 못한 접촉에 휙 뒤돌아 균형을 잃고 말았다.



<7>



 “어!”

 “어어어?”

 “크윽!”

 

 넘어지면서 왼발로 세게 땅을 딛고 무릎으로 땅을 찧었다. 뼈를 깎아내는듯한 고통이 다리부터 허리께까지 찌르르하고 올라와 수혁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같이 넘어졌던 해랑은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아이고-”

 “흐으….”

 

 해랑은 완전히 자신의 품에 널브러진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다리가 너무 아픈 나머지 차마 건드리지도 못하고 웅크린 채 끙끙대고 있는 수혁의 어깨를 조심스레 붙잡았다.

 

 “이봐, 괜찮아?”

 

 그새 식은땀이 얼굴 가득 흐르고 있었다. 수혁은 서둘러 주머니를 뒤져 진통제를 찾았지만 덜덜 떨리는 손은 약통도 제대로 붙잡지 못했다. 겨우 붙잡은 약통은 극심한 고통에 절로 주먹이 꽉 쥐어져 펴지지 않아 뚜껑조차 열지 못했다.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꽉 맞물려진 이 사이로 말이 세어나왔다. 보다못한 해랑이 집어던지려는 통을 낚아채듯 빼았아 두 알을 입에 넣어주자 서둘러 삼켰다.

 

 수 분의 시간이 흐르고  수혁은 깊은 숨을 내뱉었다. 본인이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다고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조용히 눈을 감고 가쁜 숨을 짧게 내뱉기만 했다. 해랑은 제 품에 기대 떨고있는 수혁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마른 몸은 딱히 무겁지도  않았다. 간만에 품에 느껴지는 온기 때문인지 이상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수혁의 뺨에 흐르는 땀을 닦아줄지 말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들며 손을 들어올리려던 찰나, 류환의 목소리가 정신을 차리게 했다.

 

 “서수혁.”

 

 류환이 물을 건내며 불렀다. 화들짝 놀라며 눈을 뜨는 수혁은 해랑에게서 떨어져나와 벽에 기대 앉아 받아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벌컥벌컥 들이키며 입 밖으로 흐른 물은 목을 타고 흘러 셔츠 사이로 사라졌다. 흰 와이셔츠가 조금씩 젖어들어갔다. 거칠게 움직이던 목울대가 멈추고 수혁은 입 주변을 옷소매로 사정없이 닦아냈다. 갑작스런 고통에 몸에 힘이 들어가 한바탕 곤욕을 치루고 나자 긴장이 풀리며 미약하게 옅은 경련이 일었다. 결국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말아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안경을 벗어 눈가를 거칠게 비비고는 다시 안경을 썼다. 몸이 아프니 정신 마저 나약해지고 있었다.

 

 “이래서 일을 아예 쉬게 된거다. 다리를 계속 써서 상태가 좋아질 수가 없어. 빌어먹을 김태원이 뭘하고 싸돌아다닐지 모를 판국에, 젠장!!”

 

 수혁은 잡고 있던 컵을 바닥에 내려쳐버렸다. 손에 얇은 유리 조각들이 박혀 남아있던 물에 붉은 피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시오.”

 “조장!”

 

  누가 들어도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수혁은 자신이 마치 보호의 대상처럼 느껴졌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속으로 욕을 중얼거렸다. 수혁이 채 거절하기도 전에 해진이 소리치자 여전히 바닥에 주저 앉아있던 해랑이 말했다.

 

 “리해진이. 너는 방에 기어들어가 있으라. 아새끼 와 이래 뻔뻔한기야?”

 “들어가 있으라.”

 

 류환의 냉정한 목소리에 해진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휙 뒤돌아 제일 끝 방으로 들어갔다.

 

 “원류환이, 네가 저새끼 교육 좀 시켜라. 아새끼가 싸가지가 없어. 네 말 말고는 들은 척도 안하잖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류환을 뒤로하고 해랑은 서둘러 수혁을 부축해 일으켰다. 거의 안기다시피 부여잡고 일어나 소파에 가서 앉자 언제 찾은건지 류환이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박힌 유리조각을 빼내자 움찔 하고 떠는 수혁을 보고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뭐하러 컵을 깨고 그럽니까?”

 

 서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 했다.

 

 “…김태원은 정확히 어떻게 된거요?”

 

 해랑의 물음에 얼마간 답이 없었지만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너무 길어지자 해랑이 무어라 말하려했다. 그때 수혁이 입을 열었다.

 

 “그 날, 나는 곧장 내려갔다. 당연히 너희들은 기절해 있었고. 그런데 김태원은 벌써 도망친 건지 보이지 않았지."

 

 그 말을 하는 수혁은 굉장히 피곤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