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수혁텀 2
*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 개봉작.
<4>
“선배! 어떻게 된거에요? 왜-”
“아, 됐어. 신경 쓰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
사무실로 돌아가던 수혁은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조장들에겐 아직 밝히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5>
그 날 이후 모든 통보는 일반 요원들을 통해 알려졌고 수혁은 세 조장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조장들이 퇴원을 할 무렵에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세 명의 능력을 이렇게 내버려두는건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피땀흘려 익힌 기술을 그냥 날려버린다는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
“뭐, 그 쪽 다리를 보니 그런 것도 같네.”
해랑의 악의없는 중얼거림에. 수혁은 잠시 말을 멈추었지만 쳐다보지 않았다. 대꾸하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주지 않은 게 있는데.”
넓지 않은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찬바람도 들지 않는데 세 조장은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음을 느꼈다. 김태원은 수감되지 못했고 남한이든 북이든 어디에 있는지 생사확인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운 좋게도 세 명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 소식은 아니었다.
“남한 아새끼들은 일처리를 어째 하는 기야? 수류탄 들고 자폭하는 걸 눈앞에서 봤는데 그걸 놓쳤다고?”
해진이 따지고 들었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수혁은 형용할 수 없는 얼굴이었는데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우울하거나 슬퍼보이기도 했다.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계속 끊기는 흐름은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날 밑에 남아있던건 너희 셋뿐이었으니까. 곧바로 수색했지만 찾을 수 없었어.” 수혁은 잠시 숨을 들이 쉬었다. “앞으로 여기 국정원에서 따로 거처를 마련해 줄테니 거기서 살도록 해라.”
그제야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조장들이었다.
“셋이서?” 해랑이 말했다.
“불편하더라도 어쩔 수 없어.” 수혁은 씨익 하고 웃었다. “그 이후는 상황을 더 지켜보고 결정하도록 한다.”
어느새 수혁은 으레 짓던 굳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뻔하지 않나? 북에 된통 당할거다.” 해진이 비웃으며 말했다.
“경고하는데,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마라.” 수혁의 미간은 한없이 찌푸려졌다. “5446부대인 이상 어떻게 해도 민간인은 될 수 없어.”
해진은 곧장 목발을 집고 서 있는 수혁에게 달려들었다. 헛숨을 들이키며 손쉽게 넘어진 수혁의 목에 목발을 들이밀며 말했다.
“누가 그렇게 해달라 그랬나?”
“리해진 동무! 그만하라!”
원류환이 소리치며 해진을 거칠게 때어냈다. 끙끙대며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수혁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거칠게 내치는 탓에 닿지 못했다. 괜히 류환과 접촉했다가 뒤에서 노려보고 있는 리해진에게 당장에라도 소리 소문없이 제거당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수혁은 다리의 고통에 어쩔 수 없이 조장들 앞에서 진통제를 꺼내들어 몇 알을 입에 털어넣었다. 웬만하면 먹지 않으려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수치심에 우울해졌다. 그래도 명색이 선배 조장인데 불구하고 이런 꼴을 하고 있으니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대기해라.”
어설프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이젠 어떻든 상관없는 것 같았다. 잠깐 눈이 마주친 원류환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수혁은 빠르게 병실에서 사라졌다.
“저 불쌍한 동무 좀 보라우. 리해진이 너는 뭐가 그렇게 싫어서 저런 애국자를 반 병신으로 만들어 놓네?”
해랑은 혀를 쯧쯧차며 어린 남자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남자는 전혀 양심의 가책은 없는 것처럼 당당하기만 했다.
“상관없잖아요.”
“어린 노무 새끼가 말뽄새하고는.”
“리해진”
“네.”
류환은 이 말을 해도 정말 괜찮을 지 조금 불안했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나으리라 믿고 입을 열었다.
“앞으로 저 사람 함부로 대하지 말라.”
그러나 해진은 흘끗 한번 쳐다봤을 뿐,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