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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핀치] 납치 이후 시점 上

by 개무 2017. 2. 19.

 

 

 

 

 

 베인 손바닥은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 완전히 나아도 흉터가 남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당사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존 리스는 답답한 마음에 키보드를 타닥거리며 두들기고 있는 해롤드 핀치를 집요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핀치는 그 눈빛을 알아챘음에도 불구하고 모니터만 쳐다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분명 엄청 신경 쓰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존 리스의 인내심도 꽤 만만치 않았기에 둘은 별 것도 아닌 일에 신경전을 벌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잉-

 

 핀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뻗었다.

 

 “오랜만이구나.”

 

 리스는 괜히 책꽂이 앞을 기웃거리다 대충 한 권을 집어들었다. 꽤 낡아보이는 책을 뒤적거리며 몰래 훔쳐본 핀치의 뒷통수는 그마저 즐거워 보이는 듯 했다.

 

 “오, 그러니? 잘됐구나.”

 

 곧 작은 웃음이 흘러나왔고 핀치는 금세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조금전까지만해도 즐거워 보이던 핀치는 이상하게도 불안해보였다. 리스는 팔락거리며 책장을 두어장 넘겼다.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새로운 취미입니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불쑥 말을 걸어와 조금 놀랐지만 리스는 태연히 대답했다.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한 권 정도는 예의상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작게 웃는 입을 보고 안심했다. 그러나 웃는 입과는 다르게 그의 미간은 조금 찌푸려져있었다. 리스는 책의 제목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이런 것도 읽어두면 언젠간 다 도움이 될겁니다.” 리스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여전히 책의 제목은 몰랐다. “제가 어떤 위장 신분을 가지게 될 지 모르니까요.”

 “철학이요?”

 

 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책꽂이에 다시 꼽아넣었다. 그제야 보이는 책의 제목을 보니 자신이 택도 없는 소리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핀치가 이상하게 생각 할법도 했다. 철학의 이론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과 관련된 위장 신분은 애초에 핀치가 만들어 주지도 않을 것이다.

 

 “누구죠? 친구인가요?”

 

 괜히 말을 돌리는 리스를 알아챈 핀치지만 굳이 걸고 넘어지지 않았다. 그저 무슨 소릴 하냐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전화 말이에요.”

 

 아- 하고 작은 탄성과 함께 핀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무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스씨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핀치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곧 리스는 이 상황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핀치도 왠지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리스는 산책이라도 가기 위해 목줄을 챙기자 베어가 먼저 알아채고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오늘은 번호도 안나올 것 같은데 산책이라도 같이 갈래요?”

 “죄송합니다, 리스씨. 저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서요. 혼자 가셔야겠습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지만 리스는 신경 쓰지 않고 그러냐며 베어와 함께 도서관을 나섰다. 그런 리스를 수상한 듯 흘끗 쳐다보는 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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