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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네임/동훈무진] 기회

by 개무 2021. 11. 21.

 





“좀 늦었네. 잠을 잘 못 잤어?”

최무진을 본 윤동훈이 한 말이다. 주인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방에 떡하니 한자리 차지하고 있던 동훈은 어딘가 우울한 낯을 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샅샅이 훑듯 눈길을 주었다. 슬쩍 웃어 보이는 낯이 평소와 달랐다. 동훈은 알 수 없는 기시감에 감히 입을 더 열지 않았다. 딱히 말수가 많은 친구는 아니었지만 무어라 대꾸는 꼭 하던 놈이 입을 닫고 있으니 여간 수상한 게 아니었다. 업무용 탁자로 걸어가는 무진의 뒷모습을 따라 동훈의 고개도 돌아가다 멀뚱히 서 있는 태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야, 태주야, 너네 형님 오늘 무슨 일 있으시다냐?”
“아니요, …조금 늦게 나오신 거 말곤 별일 없었습니다.”
“그래~ 아침부터 무슨 일이 있겠냐마는… 오늘따라 영 기운이 없어 보이네.”

뻔히 들리는 곳에서 무진의 이야기를 했지만 당사자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여상히 제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무진에게서 작게 앓는 듯한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의 시선은 책상 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훈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특히 무진에 한해선 더욱. 그래야만 했다.

“태주야, 잠깐 바람 좀 쐬고 와라.”
“…네, 형님.”

썩 내키지 않는 낯으로 두 형님을 번갈아보던 태주가 방을 나서며 문을 꼭 닫았다. 잠시간 적막감이 흘렀다. 동훈은 곧장 무진을 바라보았다. 무진 또한 동훈을 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내가?”

이번에 대꾸하지 않은 건 동훈이었다. 무진은 큰 눈을 느리게 꿈뻑거렸다. 살아온 길 때문인지 예민한 성정 때문인지 제대로 잠을 자는 날이 적은 무진을 보는 건 일상과 다름없었으나 오늘은 꽤나 피곤해 보였다. 눈매가 살짝 부르튼 것이 울기라도 한 사람 같았다.

“넌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냐.”

질문이 아니었다. 동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무진을 알고 지낸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가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구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동훈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게 느껴졌다. 감출 요량으로 괜히 이마를 벅벅 문질렀다.

“하, 최무진. 확실히 뭔 일 있네.”

동훈이 무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의자에 앉아 있는 무진을 향해 한 팔은 머리맡에 한 팔은 팔걸이에 두고 덮어싸듯 내려다 보았다. 무진이 내쉬는 숨결이 입가를 간질였다.

“또 악몽이라도 꾼 거야?”

지금껏 지켜 봐온 최무진이라는 자는 참 외로운 자였고 그 틈새를 파고드는 건 생각보다 쉬운 작업이었다. 그가 기댈 수 있게, 잠시라도 위로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것. 윤동훈이 한 것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애석하게도 무진은 그런 그에게 곁을 내어준 것이다.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시작과 결과야 어떻든 그 과정은 거짓이 아니었다. 종내엔 돌아갈 곳이 따로 있었을 뿐.

“너는 뭐든 너무 깊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 보이는 대로 받아들여. 그래야 네가 살아.”
“지금 그 말, 나한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소리냐.”

동훈은 동요하지 않았다. 이젠 뒷덜미마저 서늘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무진은 눈을 감아버렸다.

“난 언제나 너한테 진심이야.”

깊게 감겼던 무진의 눈이 다시 동훈을 바라보았다. 무진은 사랑이라는 말로 그를 전부 안아줄 순 없었으나 그렇다고 낡은 밧줄 갈아끼우듯 동훈을 놓기란 쉽지 않았다. 앞으로는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지만 함께한 지난 시간들, 그것이 잠시에 불과했더라도 무진에게 머물렀던 동훈의 눈빛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그런 그의 시선이 오롯이 저를 향하고 있는 것이 좋았다. 또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눈에 힘을 주었다. 파르르 잘게 떨리는 눈가에 동훈은 가볍게 입술을 눌렀다.

“악몽을 꿨어. 간만에 꽤 지독한 악몽이었지. 앞으로도 그런 악몽은 없을 거다.”
“오늘은 같이 잘까?”

무진은 작게 웃었다. 그게 위로라도 된 것인지 한결 편안해 보였다.


*


무진을 등 뒤에 두고 한 발자국 앞서 있을 때면 항상 어떠한 느낌이 있었다. 문 너머에 지우가 있을 텐데. 이 꼴을 보지 말아야 할 텐데. 생각하면서 뒤돌아 본 곳엔 역시 총을 든 최무진이 서 있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알아채고 말았구나. 언제부터였을까. 사실을 알고 곧장 달려온 걸까? 그가 쏟아내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안돼, 지우야! 나오지 마! 지우는 안돼, 내 딸은 안돼…”

무진은 몸을 떨며 울었다. 등 뒤로 딸아이가 세게 문을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덜컹이는 문고리를 꽉 움켜쥔 동훈도 비져나오는 눈물에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마지막이구나.

“결국, 결국 이렇게…….”

지우에 대한 걱정일까. 무진에 대한 미안함일까. 죽음에 대한 공포일까. 목소리가 달달 떨렸지만 튀어나오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여기까진가 보다. 그치?”

무진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사랑해서 미안해.”

마주한 총구의 시커먼 속 너머로 보이는 건 비록 무진의 두 눈이 전부였지만 상처받은 모습이 여실했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진심이어서 미안하다, 최무진.”

무진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무진이 동훈의 비밀을 안 뒤 한 번은 봐줬을거임 ㅜ
사실상 이 바닥에서 아무리 몸집을 키운다해도 숨이 안붙어있으면 말짱도루묵인데도 불구하고 제 목숨보다 무진을 더 위하는 그의 행동에 한 순간에 내칠 순 없었고,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고, 기회를 주면 동훈이 완전히 자신에게 올거라 믿었을거임. 확신은 없어도 희망은 가졌겠지 ㅜㅜ
한 편으론 그게 미련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영 포기할 수 없었던 무진은 결국 동훈에게 기회를 주기로 선택함…
나한테 왔어야지 되뇌이는 거 보면 동훈은 몰랐지만 무진은 동훈에게 어떤 기회를 줬을 것 같다 ㅜㅜ 한 두번이 아닐거야 ㅜㅜㅜ
으악 찌통 너무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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