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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비휴/코너행크] 배가 많이 고픈 행크

by 개무 2018. 6. 3.






식기가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넓지 않은 주방을 가득 메웠다. 음식이 담긴 접시는 하나였지만 준비된 식기는 두 사람 몫이었다.

“혹시 뭐, 티리움 충전이라도 해야 하나?”

그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코너의 신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서로가 만난 지 약 5개월이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코어에 이상이 없는 한 필요 없습니다만, 손실이 많을 경우에는 해야 할 필요가 있죠.”

으음- 작게 앓는 소리를 낸 행크는 덥수룩한 수염에 파묻힌 턱을 두어 번 긁적였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접시 언저리였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내 레토르트 스파게티를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물어보시는 이유가 뭡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코너는 마주 앉은 남자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시선을 느끼고도 일부러 모른 척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코너의 머릿속엔 떠나지 않는 의문이 생겼다. 파트너가 상당히 과묵해진 것이다. 물론 그는 주절대는 타입이 아니지만 평소와 다름을 알아내는 건 코너가 암산을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 자신의 상위 모델인 RK900에게서 최신 버전의 사회 관계 프로그램을 업데이트 받았기 때문에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


사이버 라이프가 안드로이드 생산을 중단한 이후 부품의 가격은 급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경찰의 변변찮은 월급으론 꿈도 꿀 수 없는 가격까지 오르고 말았다. 처음부터 필요한 건 인간이 아니었지만 그것을 빌미로 여전히 안드로이드를 노예로 부려먹고 싶어 하는 인간들은 존재했다. 노동의 강도가 육체적 부담으로 연결되지 않는 건 상당한 이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유를 얻었지만 결국 기계는 기계였다. 그렇게 동족상잔에 이르렀다. 인간이든 안드로이드든 끝내 같은 동족을 죽이는 것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기적인 인간들 때문에 힘겹게 얻은 자유를 포기하고 노예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부품을 갈취하겠다는 안드로이드들이 늘어난 탓에 범죄율은 하루가 다르게 증가했다. 어쨌거나 바빠진 행크였다. 그 덕에 코너는 온갖 투덜거림을 들어야 했다. 행크는 그 행위가 마치 삶의 원동력이라도 되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모든 것을 욕하고 있었다.

염병할 신호등 같으니라고! … 망할 비둘기들! 신경질적인 클락션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오늘은 빌어먹을 새까지 내 앞 길을 막는군. 도로 한 중간에서 웬 비둘기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비켜주지 않았다. 푸드트럭에 도착할 시간이 길어질수록 행크의 얼굴도 험악해져갔다. 퍼드덕대며 날아가는 비둘기들에게 창의적인 욕을 선사한 행크는 급하게 엑셀을 밟았다.

“많이 피곤하십니까, 행크?”

삼거리 끄트머리에 위치한 가게가 행크의 시야에 들어왔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것 같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코너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좀 있다 국립묘지에서 보겠구만.”
“또 사건입니까?”

가게 앞에 차를 세운 행크가 고개를 홱 돌려 코너를 노려보았다. 코너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이 모자란 기계 놈아! 이러다간 곧 죽을 것 같단 말이다!”

굳은 얼굴을 한 코너는 금세 표정을 풀더니 이런 농담쯤은 이제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웃었냐? 파트너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다는데 웃음이 나와?”
“죄송합니다. 농담하시는 줄 알고….”

몇 시간 전만 해도 농담이라며 웃어넘겼겠지만 지금 행크는 매우 배가 고팠다. 막무가내인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고 진저리를 치며 문고리에 손을 뻗자 왼손이 턱 붙잡혔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확대된 코너가 있었다.

“뭐야?” 행크가 눈을 치켜떴다.
“큰일입니다.”
“갑자기?”

행크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코너는 그의 심박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약간 긴장했다고 판단했다.

“행크는 쓰러질 것 같다고 하시는데 저는 알 수가 없는 걸 보니 프로그램에 오류라도 생겼나 봅니다. 최대한 빨리 점검을 받으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땅이 꺼질 듯한 깊은 한숨이었다. 행크는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제 이마를 내려쳤다.

“아이고 머리야….”
“이번엔 두통입니까? 심각하게 배가 고픈 것 말고는 멀쩡하신데요. 정말 오류가 심각-”
“코너!”

놀란 코너는 눈을 크게 떴다.

“난 비유를 한 거야… 며칠 잠 좀 못 잤다고, 한 끼쯤 못 먹었다고 내가 갑자기 풀썩 쓰러지기라도 할 것 같냐? 너나 걱정해. 생산도 중단됐는데 범죄자 잡겠답시고 온 동네를 날뛰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쩔 건데? 예전과 상황이 다르다고!”

코너는 그제서야 알아챘다. 최근 행크가 신경질적이고 조용해진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코너의 LED가 깜빡거렸지만 마른 세수를 하던 행크는 알아채지 못했다. 코너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들리는 문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든 행크는 코너가 운전석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문이 열리고 코너의 상체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곧이어 얼굴이 양손에 붙잡혔다.

“무슨 짓이- 흡!”

코너가 그대로 입술을 부딪혔다. 행크의 몸이 바짝 얼어붙었다. 코너는 눈을 감지 않았고 행크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눈이 서로를 아주 가까이서 노려보듯 마주하고 있었다. 행크는 안드로이드의 눈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정말 사람과 똑같았다. 숨이 차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을 허락을 구하듯 베어 물자 입은 완전히 열리고 말았다. 혀가 닿자마자 행크의 손이 코너의 어깨를 밀어냈지만 코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샌가 찌푸린 미간을 더욱 못살게 군 행크는 양손으로 있는 힘껏 밀어냈다. 그제서야 제 의지로 조금 물러난 코너가 숨을 몰아쉬는 행크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며 속삭였다.

“저는 경위님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진심이에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건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니까요.”
“이놈이 아주 염병을 하고 있어! 배고파 뒤질 것 같으니까 가서 햄버거나 사 와! 콜레스테롤이 어쩌고 하기만 해봐, 아주 죽도록 패버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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